[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전라남도의 한 군(郡) 소재지에 위치한 시골 마을에는 현재 90세를 넘긴 할머니 두 분만 살고 있다. 그나마 거동도 불편해 교류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불과 1년여 전까지 이 마을에서 살았던 어르신 P(92·여)씨. 그는 지난해부터 치매 증상이 갑자기 심해져 자녀들이 거주하는 수도권 인근(경기 양주)의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몇 년 전만 해도 기운 센 할머니 서너분이 밭일도 서로 도와가며 오손도손 지냈지만, 모두 90세를 넘기면서 시골 마을은 을씨년스럽게 변했다고 한다.
마을이 원래 이렇게 작지는 않았다. P씨의 딸인 K(60)씨는 “어릴적 마을은 항상 북적북적 했던 곳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지금은 폐교된 인근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도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K씨의 또래인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들이 한창 어린 시절을 보냈던 때다.
K씨는 “비어있는 옛 집을 가보니 거의 폐허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마당 곳곳에 잡초가 무성했고 거미줄도 여기저기 있었다”면서 “이제 곧 마을 전체가 사라질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빈집 쇼크’ 부르는 고령화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빈집 쇼크’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는 수도권을 한참 벗어난 시골을 중심으로 빈집이 많아지고 있지만, 몇 년 안에 노후 아파트들의 빈집 전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저출산 고령화를 일찍 경험한 일본의 빈집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 할 때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한국은행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빈집 수는 106만9000호로 20년 전인 1995년(36만5000호)보다 70만호 넘게 늘었다.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에서 6.5%로 증가했다.
P씨처럼 수도권과 5대 광역시를 제외한 지방의 빈집 규모가 현재 전체의 56.8%에 달하고 있다.
오강현 한은 금융안정국 과장은 이날 내놓은 BOK 경제연구에서 “주택보급률이 2015년 현재 102.3%로 주택 수가 가구 수보다 많은 상황에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주택 수요 증가세 둔화는 빈집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추후 10년간 노후 아파트가 급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건축 연한인 준공 후 30년이 경과하는 주택 수는 2016~2025년 중 약 450만호(연 45만호)로 추정되는데, 이 중 아파트가 277만호(61.5%)로 가장 많다. 특히 지방 소재 주택의 경우 고령화에 따른 수요 부족과 낮은 추가 자금부담 능력 등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 속도와 맞물려 빈집 쇼크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빈집은 외관상 흉물스러운 것은 둘째 치더라도 마을 치안상으로도 좋지 않은 악영향도 크다. 나아가 지역 전체의 몰락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빈집 관리 대책 마련해야”
전례가 없지 않다. 이웃나라 일본이 이미 빈집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본은 인구 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인 1988년 당시 빈집이 전체의 9.4% 비중이었으나, 25년 후인 2013년 13.5%까지 상승했다.
오는 2030년대에 가면 빈집 비중이 30% 이상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빈집의 활용 혹은 해체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16년 뒤인 2033년에는 빈집이 2166만호가 될 것”(노무라종합연구소)이라는 예측이다.
오강현 과장은 “기존 주택 노후화에 따른 빈집 증가 가능성에 대응해 빈집 활용 등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빈집을 보육원, 숙박시설, 취약계층 임대주택 등으로 활용하고, 빈집 소유주의 개보수 비용을 지원한다고 한은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