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한 노인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photo 뉴시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한 노인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photo 뉴시스

저출산은 사회의 양면에서 영향을 미친다. 사회의 젊은층이 감소해 노동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한쪽 면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사회적 은퇴와 육체적 노화로 인해 돌봄 대상이 되는 노인 비율이 증가하는 게 다른 쪽 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후자를 일컫는 말이 고령화인데, 우리나라는 엄청난 속도로 늙어가는 중이다.

2000년 고령화사회가 된 후 2017년 고령사회가 되었고 2025년에는 전체 인구 중 고령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 고령국가인 일본이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 11년이 걸렸다는데 우리의 경우 그 간격이 고작 8년에 불과할 정도로 엄청난 변화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복지는 사회의 주된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재 노인복지를 지탱하는 두 축이 모두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들에게 친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국내에는 흔히 말하는 ‘4대 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업재해보험)’ 외에도 노인복지를 전담하는 별도의 사회보험체계가 존재한다. 2008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한 노인장기요양보험이다. 제도가 그리 친숙하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대상자가 주로 65세 이상의 고령자라 일반 인구가 이 제도를 이용할 일이 없고 보험료 납부 방식도 건강보험료 중 일정 비율(올해 기준 약 12%)이 자동적으로 장기요양보험 재정으로 산입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건강보험보다 적립금 먼저 소진

이런 이유로 인지도는 낮지만 장기요양보험이 노인복지 분야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은 매우 크다. 흔히 ‘데이케어’라고 불리는 주간보호시설, 가정에 방문해서 돌봄을 제공하는 방문요양은 물론 요양원이라 불리는 노인요양 시설까지도 장기요양보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정이다. 현재 추산으로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내년도인 2023년도부터 적자로 전환되며 2028년을 기점으로 적립되어 있던 예비비도 모두 고갈된다. 대략 5~6년 정도가 남은 셈인데 장기요양보험은 이보다 고갈 시점이 더 빠르다. 아직 올해 결산이 나오지 않았지만 올해인 2022년부터 장기요양보험의 적자 전환이 거의 확실시되며 적립된 예비비의 고갈 시점은 2026년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수급자도 매년 10% 정도씩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니 결국은 건강보험보다 먼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건강보험료 일부를 떼어가는 형태이다 보니 재정적으로 똑같이 어려워지고 있는 건보료에서 가져가는 몫을 무작정 늘리기도 어렵다. 국고지원금 정도 외에는 수입을 늘릴 방안이 마뜩잖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노인에 대한 개호보험(介護保險), 즉 일본판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노인에게 걷는 보험료를 증액하는 방식을 고려 중이지만 선진국 모임이라 할 수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례적으로 노인빈곤율이 높은 한국에서는 이런 방식도 참고하기 어렵다. 결국 법정 건강보험료율 상한인 8%를 고쳐서라도 총액을 늘리고 여기서 장기요양보험이 가져오는 몫을 늘리지 않는다면 재정 파탄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런데 노인복지 문제는 한 가지 악재가 더 겹친다. 고령화만이 아니라 노동가능인구 감소의 영향도 같이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복무요원도 현 수준 유지 못해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의 병역자원 규모를 파악하려면 현재 10살 남아의 수를 확인하면 된다. 그런 방식으로 추산했을 때 병역자원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 2020년 기준 병역의무를 진 만 20세 남성은 33만여명인데 2026년부터는 23만여명으로 30%가 감소하고, 2040년에는 2020년에 출생한 남아의 수인 약 12만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사실은 주무 부처인 병무청에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이미 전투경찰(전경)과 의무경찰(의경)의 폐지와 같은 형태로 대체복무 범위를 좁혀 병사 수를 충원하는 중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올해 하반기 국정감사에서는 이기식 병무청장이 현역 처분율을 더 높여 안정적인 병력 규모를 유지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바꿔 말하면 사회복무요원(옛 공익근무요원)과 같은 보충역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들 사회복무요원이 지금도 노인 장기요양기관 등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2년 9월 기준, 보건과 복지 분야에 배치된 사회복무요원의 수는 2만7000여명 정도다. 장기요양기관에 근무 중인 사회복지사의 숫자가 3만3000여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는 인력이 노인복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앞서 병무청장의 언급처럼 현역판정 비율이 지금보다 올라가면 이들 중 상당수가 현역 장병으로 복무하게 되고 복지 분야에는 대규모 인력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공짜에 가까운 월 80만원짜리 인력이 빠진 자리를 최저임금을 적용한 노동자로 채운다면 고용 비용이 2.5배가량 늘어난다. 앞의 비용 추계에서도 잡히지 않는 새로운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데 아직 대책은커녕 논의조차도 적은 상태다.

저출산은 복합적인 문제고 해결 방법도 뾰족하게 나온 바가 없다. 2040년의 병역자원이 이미 2년 전인 2020년 출생아 수로 결정된 것처럼 당장 저출산이 다소나마 해소된다고 하더라도 그간 누적된 저출산 현상이 즉시 사라지지도 않는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는 허상을 좇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저출산의 여파를 명확히 파악하고 여기에 맞는 대응책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의료와 복지 분야의 파국은 이미 예정되어 있고, 이 파국을 가장 먼저 맞는 곳은 노인복지 분야다. 구체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늘어난 비용을 누가, 어떻게 감당할지에 대한 나름의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