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이 8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수입보다 지출이 1778억원 많았다. 건보 보장성을 강화하는 일명 ‘문재인 케어’가 지난해 7월부터 본격 시행되고 급속한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의료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뇌 자기공명영상(MRI)과 복부 초음파 검사, 종합병원 2∼3인용 병실료 등에 건보 적용을 확대했다. 2022년까지 미용, 성형을 제외한 전 분야로 확대돼 적자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현재 63% 수준인 건보 보장률은 문재인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에 70%까지 올라간다. 보장성 강화로 국민 의료비 부담이 낮아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 도입 이후 의료 과소비와 대형병원 쏠림이 커지고 있어 우려스럽다. 엑스선으로도 충분한 환자들이 고가 장비인 CT와 MRI를 찾고 있다. 재작년에는 이틀이면 가능하던 MRI 검사는 이제 한 달 이상 대기해야 한다. 상급종합병원은 환자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몰려드는데 중소병원은 한산하다. 의료 과소비는 건보 재정 악화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정부의 올해 건보 적자 목표는 2조8000억원이다. 하지만 김종대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올해부터 문재인 케어가 본격화되는 만큼 적자가 3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적자가 2023년 3조8000억원, 2027년에는 7조5000억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작년까지 20조5955억원이 쌓인 누적적립금은 2026년이면 고갈된다는 경고도 나왔다.
건보료 인상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올해 보험료는 3.49% 올랐다. 8년 만에 최고 인상률이다. 2017년엔 동결했고 지난해는 2.04% 올랐다. 문제는 이게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예산정책처는 건보 재정 고갈을 막으려면 보험료율을 2026년 8.10%, 2027년 8.36%로 올려야 한다고 추산했다. 현행 법상 상한선(8%)을 넘는 수치다. 이러니 ‘건보료 폭탄이 곧 닥친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더구나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가 급증해 건보 지출 비중이 40%를 넘었다. 65세 이상은 0∼64세보다 진료비를 3배 더 쓴다. 매년 30만명씩 증가해온 노인인구는 2020년 40만명, 2025년부터는 50만명씩 늘 것으로 예측된다. 급속한 고령화 탓에 노인장기요양보험 적립금도 2022년에 고갈될 전망이다. 반면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보험료 낼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건보재정 건전화를 등한시하고 있다. 작년 9월까지 건보 종합계획을 발표한다고 했지만 아직도 묵묵부답이다. 재원 조달 대책에 대해선 ‘모르쇠’로 버티고 있다. 적립금 21조원으로 현 정부 임기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보는 걸까. 문재인 케어로 인한 추가지출은 2022년까지 35조1000억원이다. 차기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57조7000억원으로 급증한다. 생색은 현 정부가 내고 부담은 차기 정부와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셈이다. 국민건강보험법에 예상 보험료 수입의 20%를 정부 일반회계와 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하게 돼 있다. 그러나 정부 지원금은 2015년 16.1%에서 2016년 15%, 2018년 13.4%로 되레 줄고 있다. 재정 여력이 없다는 얘기다. 무책임한 행정 아닌가.
문재인 케어의 속도 조절은 불가피하다. 대한의사협회는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부분부터 천천히 건보 보장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장성 강화가 과잉진료를 유발하지 않는지 점검하고 불필요한 지출 유인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험료 누수도 너무 많다. 지난 10년간 ‘사무장 병원’ 등에 건보료를 지급했다가 환수하지 못한 금액이 2조원에 달한다. 보험사기로 인한 누수금액도 연간 5000억원에 이른다. 건보 곳간을 단단히 지켜야 하는 이유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경구가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그 결과는 예측대로 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의미다. 건강보험은 지속가능해야 한다. 재정 고갈이 뻔히 눈에 보이는 데도 손놓고 있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더 늦기 전에 문재인 케어를 재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