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에 걸린 아내를 간병하면서 힘겹게 자동차공업소에서 일하던 장모 씨(61)는 2015년 3월 뇌경색으로 왼쪽 팔다리가 마비됐다. 그나마 외동딸(31)의 벌이와 기초생활급여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거동이 점차 불편해지는 부부를 돌볼 간병인까지는 쓸 수 없었다. 결국 장 씨의 딸은 간병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장 씨처럼 노후 대비 없이 ‘의료비 폭탄’을 맞은 환자의 병 수발 때문에 자녀나 배우자가 회사를 그만두는 ‘간병 이직’ 현상이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본에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2015년 9월 ‘개호(간병) 이직 제로’를 경제 정책의 목표로 제시하며 전 사회적 대응에 나섰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간병 이직자의 전체 규모도 가늠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29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연령별 건강보험 진료비와 통계청의 생명표를 토대로 추산한 결과 65세 노인이 사망 때까지 쓰는 병원비는 여성이 9090만 원, 남성은 7030만 원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20.6%)를 더하면 노인 여성의 실제 진료비는 1억 원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20∼50대는 필요한 의료비를 턱없이 낮게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노년은퇴설계지원센터가 회사원 1552명에게 설문한 결과 이들이 예상한 노후 의료비는 여성이 평균 2269만 원, 남성이 2710만 원으로 실제 들어가는 금액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982명(63.3%)은 노후 의료비를 500만 원 미만으로 예상했고, 이 중 26%는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암 환자의 경우 가족의 고통이 더 심각하다. 국립암센터가 말기암 환자 11명 가족의 간병 경험을 심층 조사한 결과 4명은 배우자가 회사를 그만두거나 휴직했고 나머지 7명은 가정주부인 가족이 간병을 전담해야 했다. 췌장암 환자인 A 씨(71·여)의 딸(50)은 발병 원인으로 ‘간병 스트레스’를 꼽기도 했다. A 씨가 뇌성마비에 걸린 다른 가족을 간병하던 중 암이 생겼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