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 요양보호사 A씨는 집에서 행주 대신 물티슈를 쓴다. 8년간 이 일을 해 오면서 근골격계 질환을 얻어 행주를 짜는 것조차 손목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그도 장기요양보험 수급자(이용자) 집에선 별 수 없이 매번 손빨래를 한다. 이용자가 “전기료가 많이 든다”면서 세탁기 뚜껑을 봉해 놓아서다. A씨는 “부엌과 화장실 청소를 할 때 락스를 쓰지 말라는 이용자 가정도 있는데 그럴 때는 힘을 두 배나 써야 한다”고 전했다.
요양보호사 B(67)씨는 지난해 이용자 집으로 출근하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중 요양기관으로부터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용자의 자녀 중 한 명이 “B씨가 뒤에서 나를 흉봤다”고 요양기관에 항의를 한 결과였다. B씨는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문자 해고를 당하니 너무 억울했다”고 하소연했다.
올해로 도입 10년을 맞은 장기요양보험 제도는 규모 면에서 그간 덩치를 급격히 불려 왔지만 50대 후반~60대 초반 여성이 대다수인 요양보호사들은 여전히 ‘을 중의 을’로 남아 고용 불안정과 비인격적인 대우에 시달리고 있다.
19일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이하 종합지원센터)의 ‘2017 노동상담 사례집’을 보면 요양보호사들은 이용자나 그 가족의 갑질에 시달리면서도 직장을 잃을까 봐 불평 한 마디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요양보호사의 업무범위는 이용자 본인을 위한 식사 준비와 빨래 등 돌봄에 국한되지만, 현장에선 이용자 가족을 위한 집안일까지 요구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요양보호사 C(57)씨는 지난해 “딸에게 줄 김장을 해 달라”는 이용자의 요구로 노인의 가족은 물론 이웃 몫까지 대대적인 김장을 해야 했다. 명절과 제사 음식 만들기까지 동원되는 C씨는 “건강보험공단과 장기요양기관이 이런 행동을 막아 주지 않아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 받아도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D(61)씨는 이용자 할머니로부터 영양크림이 없어졌다며 도둑 취급을 받고 “벼락 맞아 죽을 것”이라는 폭언까지 들었지만 다른 벌이가 없어 속으로만 억울함을 삭여야 했다. 이용자들로부터 ‘아줌마’ ‘집사님’ ‘E여사’등으로 불린다는 E(61)씨는 “‘요양보호사’라고 불러달라는 게 그렇게 과한 요구냐”고 말했다.
극한 근로조건과 고용 불안은 잦은 이직과 퇴직으로 이어진다. 종합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재가 요양보호사의 76.4%, 시설 요양보호사의 71.6%가 일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퇴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경숙 종합지원센터장은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지자체가 함께 요양보호사의 노동권 보호를 위한 전면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할 시기”라면서 “이용자와 그 가족들도 요양보호사가 전문적인 돌봄 인력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