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인 이상 노인거주시설, '위생원' 필수 배치
다만 세탁물 전량 업체 위탁할 경우엔 제외
A 요양원, 일부 수건 직접 세탁해 위법 판결
건보공단 "법적 근거인 '전량' 의무 어겼다"
"노인 시설 입소 어르신들은 기저귀를 대부분 차세요. 거동이 불편하니까요. 기저귀를 새로 교환할 때 신체에 묻은 인분 등을 닦아드려야 하는데 일반 물수건으로 닦으면 피부가 상할 수 있어요. 심하면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욕창'으로까지 번질 수 있어요. 그래서 일반 수건에 물을 묻혀서 닦죠. 사용한 수건은 그때그때 모아서 세탁기에 넣고 빨아요. 그런데 위생원이 아닌 요양보호사가 직접 수건을 빨았다고 해서 법을 위반했다니요. 억울해요."
최근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A 노인의료복지시설(요양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23억원에 달하는 장기요양급여비용을 환수 조치당했다. 노인장기요양법 등에 따르면 30인 이상이 생활하는 노인요양시설은 입소자의 위생관리를 위해 위생원을 두게 되어 있다. 또한 건보공단은 위생원 등 종사자에 대해 시설에 급여비용을 지원한다.
위생원은 시설 내 침대 시트와 입소자 생활복 등을 세탁하는 업무를 맡은 종사자다. 다만 시설이 외부 세탁 업체와 세탁물 '전량'을 위탁 계약하게 되면 위생원을 따로 둘 필요가 없다. 업체에서 위생 관리를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보공단은 최근 시설 현지 조사를 통해 A 요양원이 위생원을 두지 않고 외부 세탁업체에 시설 세탁물을 전량 위탁하지 않았음에도 요양보호사 등 다른 직종 종사자가 세탁물을 관리한 것으로 보고 해당 요양원에 지급했던 요양급여비용을 환수 조치했다.
16일 여성경제신문이 한국노인복지중앙회로부터 전달받은 A 요양원이 건보공단을 상대로 제출한 소송장을 보면, A 요양원은 총 23억6829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환수 조치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건보공단은 "A 요양원 현지조사 결과 세탁물을 전량 위탁하지 않았음에도 위생원이 별도로 근무하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종사자 급여 비용을 부당 청구했다"고 봤다.
요양원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법령에 따르면 시설 내 모든 세탁물 즉 '전량'을 위탁 업체에 맡겨 세탁해야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시설 내에서 일부 세탁물을 위생원이 아닌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가 세탁할 수 있다는 것.
권태엽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시설 입소 환자 중 일부 중증 이상 치매 노인의 경우 개인 속옷 등을 남들이 가져가서 세탁하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보건복지부에서도 개인적인 속옷 등 예민한 세탁물의 경우엔 예외적으로 현장에서 세탁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세탁물 '전량'을 위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을 위반했다고 보는 건보공단은 즉시 환수 조치를 거두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2017년 7월 27일 국민신문고에 복지부가 답변한 자료를 보면, 당시 복지부는 "세탁물을 전량 위탁하는 경우엔 위생원을 두지 않아도 된다"면서도 "해당 경우엔 요양보호사 등 위생원이 아닌 종사자가 세탁하지 않고 전량 위탁을 맡겨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입소자 위생관리를 위해 시설 판단하에 일부 세탁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와 관련 권 회장은 "위생원이 없다는 이유로 23억원을 환수하는 조치는 수십년을 운영한 복지시설을 사형시키는 것"이라면서 "헌법에서 말하는 비례의 원칙없는 무소불위 폭력적 환수는 즉각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건보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환수 조치를 받은 A 요양원은 건보공단을 상대로 환수 조치 취하를 목적으로 소송 중에 있다. 건보공단은 소송에 대한 답변에 "환수처분은 법적 근거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며 "시설 측은 위생원을 두지 않았고, 이럴 경우 세탁물을 전량 위탁하는 것이 맞지만 일부 요양보호사가 세탁물을 처리한 결과가 확인됐고 위생원이 1명 내지 2명 결원됐음에도 장기요양급여 비용을 감액하지 않은 채 부당하게 전액 청구해 지급받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각에선 시설 내 세탁물 '전량' 외부 업체 위탁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점이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세탁물을 전량 위탁하여 처리하는 경우에는 위생원을 두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됐지만 전량에 세부적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사회복지학과 전문가 A씨는 본지에 "시설 내 개인 의류나 수건 등 주기적으로 세탁이 필요한 경우 '전량' 기준에서 제외해야 한다"면서 "세부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전량 기준이 이 같은 사례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일부 시설에선 이를 악용해 부당 수급을 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잘못 걸려 억울한 조치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인 셈이다. 법 개정을 통해 '전량' 세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