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가 난 세종병원 5층(4층이 없어 병원에서는 6층으로 표기)에는 노인 환자 16명이 있었다. 이들은 세종요양병원 환자다. 병원 측은 요양환자 병실이 부족해 2015년부터 일반병원 5층의 용도를 바꿔 사용해 왔다. 환자는 대부분 치매 등을 앓는 70∼90대 할머니다. 몸에 중증질환이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혼자서 움직일 수도 없다. 그만큼 돌봄의 손길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 일을 요양보호사 이모 씨(58·여)가 맡았다.
경력 10년째인 이 씨는 불이 난 26일도 평소처럼 환자들의 아침식사를 챙기고 있었다. 오전 7시 30분경 갑자기 비상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 씨가 ‘오작동인가’라고 생각했지만 벨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창밖으로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는 게 이 씨의 눈에 보였다. 마음이 급했다. 한 명씩 부축해 대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는 환자들에게 수건을 하나씩 주면서 “입을 막으라”고 외쳤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전기가 끊긴 탓이다. 5층 병실은 안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자동문이다. 평소 대피훈련을 받았던 이 씨도 당황했다. 그때 소방대원들이 5층 진입에 성공해 문을 열었다. 이 씨는 소방대원과 함께 할머니들을 5층 야외공간으로 대피시켰다. 그러자 영하 10도 안팎의 강추위에 환자들이 떨기 시작했다. 이 씨는 시커먼 연기로 잘 보이지도 않는 병실로 다시 향했다. 휴대전화 빛에 의존해 몇 번이나 오가며 이불을 날랐다.
잠시 후 남성 직원 한 명이 올라와 이 씨를 도왔다. 소방대원들이 비상계단을 통해 16명을 업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때 이 씨의 눈에 이불더미가 눈에 띄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들춰보자 한 할머니가 나타났다. 추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 이 씨는 할머니를 소방대원에게 넘긴 다음 가장 마지막으로 내려왔다. 당시 5층에 입원했던 박모 씨(85·여)는 이 씨의 시커먼 얼굴이 기억난다며 “그 할마이 아니었으면 다 죽었어. 덕분에 다 안 죽고 살아나왔다 아이가. 안 그래도 고생 많은데 욕봤다”고 말했다. 세종병원 2층에 입원해 있던 이 씨의 시어머니도 다행히 목숨을 구했다.
현재 이 씨는 부산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겁이 나고 떨려서 뉴스는 보지 못한다. 이 씨는 “장성 요양병원 화재(2014년)를 보고 불이 나면 환자를 꼭 지키겠다고 평소 생각했다. 대단한 것도 아니다. 내 도움을 고맙게 생각해주는 분이 있다면 그걸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사망한 의료진 3명 중에는 당직의사 민모 씨(59)가 있다. 민 씨는 불이 난 1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마지막까지 불을 끄려고 애쓰다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 교수 출신이다. 아버지도 의사였다. 밀양의 다른 병원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로 일하던 민 씨는 매주 목요일 밤 세종병원에서 야간 당직의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불이 나기 전날인 25일 밤도 마찬가지였다.
민 씨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고 한다. 환자 치료에는 적극적이고 수술도 꼼꼼하게 진행하는 걸로 유명했다. 어떤 환자라도 한결같은 태도로 맞았다. 직원들은 그를 “진짜 의사”라고 했다. 장례식장이 모자라 민 씨의 빈소는 아직 차려지지 않았다. 그가 일하던 병원 관계자는 “소아과 의사를 해도 좋을 정도로 자상하고 꼼꼼한 사람이었다. 하필이면 그날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