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몇 년 전 55세 이상 연령층에게 물어봤더니 55%가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익숙한 생활공간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리라.
그러나 실제 일본인 77%는 온갖 의료기기들이 삑삑거리는 병원·요양원에서 죽음을 맞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인 환자가 많아지고 연명의료가 확산된 탓이 가장 크지만 그 밖의 이유도 있다. 사망진단서 발급이 그중 하나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의사는 원칙적으로 환자를 직접 진찰해야만 사망진단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사망원인을 정확히 밝혀 두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 규정 탓에 어느 곳에서 임종했건 의사가 왕진에 응해주지 않으면 병원 응급실로 시신을 실어와야만 사망진단서를 발급받게 된다. 그 황망한 과정을 피하기 위해 임종이 가까워지면 아예 병원으로 옮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일본 정부가 최근 `원격 사망진단서 발급`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의사 대신 간호사가 사망자 집을 방문해 심장·호흡 상태를 확인한 후 그 정보를 전자기기로 의사에게 전송하면 원격으로 사망진단을 할 수 있게 허용한 것이다. 의사가 드문 외딴섬이나 오지에 한해 시행되지만 집에서 임종하는 사람과 그 가족의 불편을 덜어주는 조치임이 분명하다.
한국도 급격하게 고령화되면서 지난해 사망자가 28만여 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망자와 유족이 겪는 불편은 일본과 다르지 않다. 병원에서 사망하는 비율은 75%에 이른다. 요양원·도로 등지에서 숨지는 사람을 제외하면 집에서 임종하는 사람은 고작 15%다. 집에서 임종한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면 좋겠지만 언감생심이다.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 거동이 어려운 노인·장애인 등이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진료를 받는 `원격의료`를 일본은 1997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외딴섬·오지 환자부터 허용하기 시작해 지금은 모든 지역에 적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원격의료를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 반발 때문이다. 그와 비교하면 `원격 사망진단서 발급`은 사망원인에 대한 논란까지 뒤따를 수 있으니 더 요원한 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