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씨(75)는 부친이 사망하고 홀로 남은 노모를 15년 동안 돌봤다. 지난해 9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노모는 수차례 골절 수술 등 병원 진료를 받아야 했다. 입원할 때마다 간병하는 것은 ㄱ씨와 형제들의 몫이었다. 전형적인 ‘노노(老老) 부양’이었다. ㄱ씨와 형제들 모두 나이가 들어 간병과 생활보조가 힘들어지자 5년 동안 지방에 있는 민간 요양병원에 노모를 모셨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 덕에 요양병원에 내는 돈은 월 60만원 수준이었고, 그 비용은 형제들과 나누어 냈다.
ㄱ씨에게도 자녀가 둘 있지만 “빤한 형편에 할머니 생활비까지 내라고 할 수가 없어서” 자식들에게는 손을 벌리지 않았다. 지금 그가 고민하는 것은 자신의 삶이다. 10년 전 교직을 퇴직한 그에게는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당장 먹고살기엔 지장이 없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거나 건강이 나빠져 병원 신세라도 지게 되면, 보험도 별로 들어놓은 게 없는데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자식들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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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씨(56)에게는 89세의 어머니가 있다.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한 뒤 계약직으로 다른 회사에 재취업한 ㄴ씨는 형제들과 함께 몇 년 전부터 돈을 모아뒀다. 노모에게 장차 들어갈 병원비와 요양비를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어머니는 부상으로 한동안 침상에 누워 지냈고, 그때마다 개인 간병인을 썼다. 매달 간병에 들어가는 돈이 200만원이 넘었다. 직장 다니면서 노모를 돌볼 수 없어, 3년 전에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그 후 주말마다 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형제들과 모은 돈은 금세 바닥이 보였다. 결혼을 하지 않은 ㄴ씨는 자신의 노후에 대해선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고 말한다. “퇴직금과 국민연금 등으로 혼자 살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부양(扶養)의 의미는 ‘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의 생활을 돌보는 것’이다. 민법 제947조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간에는 서로 부양의 의무가 있다”고 정해놓았다. 지난 세기까지 자식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의무였다. 늙은 부모를 봉양한 뒤에 자신이 늙으면 자식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전통적인 ‘부양의 대물림’은 무너졌다. 정부는 지난 19일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부모를 모시는 자식의 역할’이 사라져가는 시기에 아직 이를 떠맡을 ‘공공의 역할’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도, 법적·제도적 뒷받침도 부족하다.
보건사회연구원이 2015년 내놓은 보고서 ‘노인 단독가구의 생활 현황과 정책과제’에 따르면 노인의 자녀동거율은 1994년 54.7%에서 2011년 27.3%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노인 단독가구는 40.4%에서 68.1%로 증가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노인 부부 가구는 1994년 26.8%에서 2011년 48.5%로, 독거노인은 13.6%에서 19.6%로 늘어났다. 자식세대는 자기들 삶을 꾸리기에도 벅차다. 취업난 등으로 청년층이 돈을 벌기 시작하는 나이는 점점 늦춰지고 있다. 이제 60대에 접어드는 이들의 상당수는 아직 자식들이 자리를 잡지도 못한 상황이다. 지금의 노인세대는 부모의 부양을 책임졌던 마지막 세대이자, 자신의 노후를 자식에게 맡기기 힘든 첫 세대가 됐다.
부모 부양과 자식 교육 등에 돈을 쏟아부어야 했던 지금의 노인세대들은 스스로를 위한 노후준비가 돼 있지 않다. 국가통계포털에 나온 가구 특성별 빈곤율을 보면 가구주 나이가 66세 이상인 ‘은퇴연령층’의 지난해 시장소득 빈곤율은 65.4%였다. 노인 10가구 중 6~7가구는 임금이나 사업소득 등으로 버는 돈이 중위소득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공적연금이나 개인연금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통계청이 지난 25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중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55~79세 고령층 중 지난 1년간 연금을 받은 사람 수(584만7000명)는 전체 고령층의 45.3%에 그쳤다. 절반 이상이 공적연금(국민·사학·군인·공무원·기초연금)과 개인연금의 사각지대에 있다. 연금을 받는다 해도 그 액수는 대부분 생활비 수준에 못 미친다. 전체 연금 수령자가 받는 월평균 연금은 52만원에 그쳤다. 수령액이 10만원 미만인 비율도 0.7%였고, 10만~25만원 46.8%, 25만~50만원 26.2%였다. 연금액수가 월 5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율이 전체의 73.7%였다. 연금을 한 달에 150만원 이상 받는 이들은 8.7%에 불과했다. 가족에서 사회로, 부양의 공공화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 멀고 퍽퍽한 노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