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시설 質 높이고 수준 낮은 병원 퇴출...정부 노인 맞춤 케어주택·방문건강관리 시스템 구축중
[아시아경제 유인호, 박지환 기자] 일본 길거리를 가다보면 '폿쿠리 신사'라는 푯말이 눈에 띈다. 폿쿠리는 일본말로 우리말로 하면 '꼴깍', '뚝딱' 정도의 의성어다. 금방 숨이 넘어가는, 죽는 모습을 의미하는 말이다. 노인들이 비싼 병원비로 가족에게 부담을 주거나 병간호로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고 편안하게 한순간에 숨을 거둘 수 있도록 기원하는 곳이다.
세계 최고 고령화 국가로 노인 요양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졌다는 일본도 이런 사회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고령화를 무섭게 뒤쫓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가. 노인 요양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가 일본보다 더하면 했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노인 홀로 또는 노부부가 자살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연일 요양병원 보험사기 사건 소식이 전해진다.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 일본이 20년 넘게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철저한 준비를 했듯이 우리도 해야 한다. 때마침 우리 정부가 커뮤니티케어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커뮤니티 케어 인프라 구축과 함께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을 위해 요양병원을 하루빨리 뜯어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 요양병원 과감히 퇴출해야=병원(病院)은 '병(病)을 고치는 집(院)'이란 뜻으로 '병을 고쳐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사전적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유독 요양병원만은 '들어가면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죽어서 나오는 곳'이라는, 본래 의미와는 정반대의 인식이 박혀있다.
이는 치료가 끝났음에도 돌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요양병원이 더 편한 노인들과 그런 환자로 병상을 채워 국가 보조금을 받고 싶은 일부 비양심적인 병원 양쪽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이 때문에 요양시설에 대한 의료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요양시설은 장기요양등급 1~2등급 환자만 이용할 수 있는 반면 요양병원은 3~5등급 환자도 이용할 수 있어 가벼운 질환에도 요양서비스를 받길 원하는 환자들이 요양병원으로 몰리고 있다. 실제 치료가 필요 없는 요양병원 환자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5%가 늘어났다.
강희정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요양 시설에서는 적절한 치료 서비스를 못 받을 것이란 걱정 때문에 환자들이 요양병원을 선호하는 부분이 있다"며 "요양시설에서도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장기 요양서비스에서 원하는 충족률을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철저한 요양병원 적정성 평가를 통해 그 결과를 수가와 연계하고 부실등급을 지속적으로 받는 병원은 퇴출시키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서영준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일부 요양병원의 경우 병상만 채워도 국가에서 환자당 200만원 상당의 보조금이 나오는 것을 악용해 의료서비스 개선 없이 본인 부담금을 받지 않는 다는 것만 내세워 환자들을 유치하는 곳도 있다"며 "요양병원 평가 결과에 따라 수가 가감지급 폭을 확대하거나 두번 이상 5등급을 받는 부실 요양병원들은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요양병원 민간에만 맡기는 건 한계…답은 공공성 강화=전문가들은 노인들의 돌봄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는 의료공공성을 더 강화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 역시 노인 인구 증가에 따라 요양병원 설립을 유도해 놓고 제대로 된 관리를 하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 20일 노인들이 요양병원이 아닌 살던 집이나 지역에서 주거, 의료·요양·돌봄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케어)' 기반을 초고령사회 진입 전인 2025년까지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인들이 자신이 집이나 지역사회에서 각종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으면서 최대한 오래 건강한 노후를 보내도록 하는 게 이번 계획의 목표다.
이 계획은 노인 맞춤형 주거인 케어안심주택 확대, 노인 낙상 예방 등을 위한 27만 가구 주택 개조 사업, 퇴원 후 방문건강관리서비스 확대, 지역연계 통한 퇴원환자 돌봄서비스,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 확대 및 개편 등의 내용이 핵심이다. 커뮤니티케어는 이미 영국, 미국, 일본 등에서 시행 중으로 제도가 활성화되면 노인 환자의 경우 요양병원을 찾아갈 필요 없이 집에서 방문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다만 정부는 이번 계획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예산 규모와 재정 조달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관련 예산 80억7600만원을 배정했지만 추후 필요한 예산은 연구 과제로 남겼다는 것이다. 아울러 일선 병원에서 조차 간호사 구인난이 문제인 것을 감안하면 방문 간호서비스에 필요한 인력 확보 문제도 큰 고민이다.
선진국 사례를 봐도 이와 비슷한 제도가 안착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중간급의 사회적 입원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없는 국내에서는 이제 첫발을 뗀 커뮤니티케어가 완벽히 정착할 때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손덕현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수석부회장은 "국내에 커뮤니티케어 인프라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 요양병원에서 퇴원해야 하는 환자들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일 수 밖에 없다"며 "요양병원을 무조건적으로 규제할 것이 아니라 요양 병원과 시설의 기능 정립을 통해 의료처치가 필요치 않은 요양병원의 33% 환자와, 의료처치가 필요함에도 요양시설에 입소해 있는 30%의 환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