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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우산개념(雨傘槪念)으로서, 가정교육·학교교육·사회교육을 총체적으로 의미한다. 따라서 평생교육은 교육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교육이라는 용어를 새로 사용하는 이유는 종래의 교육은 학교 본위로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교육은 흔히 학교교육과 동의어로 이해되어 왔기 때문이다.
즉, 학교교육이 교육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교육의 전부인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교육 전체를 지칭하는 개념이 새로 필요하게 되었다.
평생교육은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 전체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적 배경을 고려하면, 평생교육에 대한 강조는 종래의 학교본위 교육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새로운 교육관의 주장이 배경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1970년대에 거론되기 시작한 평생교육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전반적 교육관의 변화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학교본위의 교육제도로부터 학교 외 교육, 즉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을 포괄하는 총체적 교육제도를 이해하려는 교육관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학교가 제도화되고 교육의 중심이 되기 이전 시대의 교육은 평생교육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 이 시대의 교육은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학습이었으며, 이 학습은 평생에 걸쳐 계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을 위한 별도의 장소와 시간이 없이 어느 곳, 어느 때에나 필요한 경우에는 이루어졌다. 이러한 교육상황은 체계적 교육기관, 나아가 아동 대상의 제도화된 교육이 등장하기까지 계속되었다.
아동대상의 제도화된 교육기관들이 출현한 뒤에도 오랜 기간 동안 평생교육의 의식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로 평생교육은 급속히 쇠퇴하고 학교교육이 지배하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서 평생교육이 다시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평생교육론은 빠르게 전파되어 20세기 말에는 교육의 지배적 관점으로 자리잡게 되고, 세계 여러 나라는 학교중심교육제도를 평생교육제도로 개혁하고 있다.
고대사회의 교육은 성년식(成年式)과 제천의식(祭天儀式)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아동기가 끝나고 성인으로 진입하는 단계에서 신체와 정신을 단련시키는 성년식이 고대 조선사회에서 실시된 기록이 있다.
그와 동시에 영고(迎鼓)·동맹(東盟)·무천(舞天) 등은 추수기에 실시되던 제천의식으로서, 전 부족구성원이 참가하여 제사와 가무를 통하여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그 사회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구성원들에게 교육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교육기관이 발달함과 아울러 중국으로부터 한자(漢字)와 한학(漢學)이 유입되어 중요한 교육내용으로 등장하였다.
고구려의 경당(扃堂)과 신라의 화랑도(花郎道)는 체계를 갖춘 청소년교육활동으로서, 청소년들에게 책읽기·활쏘기·협동정신·애국심 등을 가르쳤다. 고구려에는 태학(太學)이 귀족층의 자제를 위한 관리양성기관으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이 교육기관이 발전함에 따라 교육과 생활이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즉, 교육은 아동 또는 청소년기에 가정과 분리된 기관에서 지식을 배우는 활동으로 성격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들을 위한 교육활동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며 종교와 관련된 교육이 불교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고려시대에는 교육기관들이 더욱 발전하고 이들이 교육의 중심역할을 하였다. 국자감(國子監)·동서학당(東西學堂:뒤의 五部學堂)과 사학인 십이도(十二徒) 등이 중앙에 있었고, 지방에는 향교(鄕校)와 서당 등이 있었다.
서당은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하여 있고 그 형태도 다양하였는데, 유학(儒學)이 중심이었던 당시의 교육에 있어서 가장 초급단계에 해당하였다. 서당은 입학요건·교육내용·교육방법·교육운영 등에 있어서 아무런 제도적 제약 없이 자유로웠다.
이에 비하면 학당과 향교는 관립의 교육기관으로서 오늘날의 학교와 비슷한 운영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십이도는 사설교육집단으로, 그 수준은 학당 및 향교와 국자감의 중간에 해당하여 국자감에 입학하는 통로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관학인 국자감의 기능이 약할 때에는 십이도가 그 기능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국자감은 당시의 최고 학부로서 여러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입학자격이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의 자녀에게 유리하도록 규정되어 있어서 지배층의 교육기관 구실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교육은 하급 교육은 일반 평민들에게도 허용되었으나 상급의 교육일수록 지배계층에 국한되어 교육의 계층화가 구축되었다.
한편 교육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된 과거제도가 고려 초기인 광종 9년(958)에 도입되었다. 관리의 선발제도인 과거제도는 사회적 지위획득을 위한 최선의 통로였기 때문에 제도교육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학습활동도 흔히 과거를 목표로 하여 이루어졌다.
즉, 국가는 직접 교육기관을 설치하여 가르치지 않으면서도 과거제도를 통하여 국민들의 학습활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촉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제도가 개인들의 학습생활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응시자격이 개방적이어서 양민(良民)이면 누구에게나 허용되었고, 시험에 한 번 떨어진 사람에게도 계속하여 응시할 자격을 주었는데 평민은 10번, 관리는 5번까지 응시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과거는 연소자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응시자가 많아 그야말로 평생교육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평생교육을 위하여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인쇄술의 발달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불경의 인쇄를 위하여 이용되었으나 점차로 일반 서적의 인쇄에도 활용되어 서책의 보급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그에 따라 교육기관 밖에서의 개인적 학습활동이 증가한 것은 물론이다.
고려시대부터 체계화하기 시작한 교육제도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이는 교육의 제도화가 철저하여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기본적 학교제도는 고려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관학으로 국자감을 전승한 성균관·사부학당(四部學堂)·향교와 함께 사학으로 서원과 서당이 운영되었다.
사대부의 자제들은 대체로 7, 8세에 서당에 들어가 기초학습을 마치고 15, 16세에 사부학당 또는 향교에 들어가 수년간 공부한 뒤 소과(小科)에 응시, 생원(生員)과 진사(進士)가 된 다음에 성균관에 진학하여 일정한 교육과정을 마치고 대과(大科)에 응시하였다.
서원은 중종 36년(1541)에 처음으로 주세붕(周世鵬)이 설립한 뒤 전국에 파급되어 한때 서원의 폐해가 국가문제로 등장할 정도로 팽창하였다.
서원은 사립이었기 때문에 제도의 제약을 받지 않아 자유로운 교육운영을 할 수 있어서 제도적 교육기관을 여러 면에서 보완하였다.
한편 향교는 정규 교육활동 외에 백성에 대한 교화기능도 가지고 있어서 여러 가지 사회교육활동을 펼쳤다. 향음례(鄕飮禮)·향사례(鄕射禮)·양노례(養老禮)·특별강습(特別講習)이 그러한 활동으로, 지역 주민에 대한 예법교육이 중심을 이루었다.
이상의 교육은 모두 남성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여성의 사회활동은 엄격히 금지되고 생활범위가 가정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자학적 예법을 근간으로 삼고 있는 조선사회에서 여성교육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특히 양반의 가정에서는 어려서부터 현모양처로서의 교육이 엄격하게 시행되었다.
성종의 모후 소혜왕후(昭惠王后)가 편찬한 ≪내훈 內訓≫은 언행(言行)·효친(孝親)·혼례(婚禮)·부부(夫婦)·모의(母儀)·돈목(敦睦)·염검(廉儉)의 7개 장으로 이루어졌는데, 궁중의 비빈을 비롯하여 일반 가정의 여성교육을 위한 지침서로 널리 활용되었다. ≪내훈≫ 외에도 여성을 위하여 편찬된 여사서(女四書)를 비롯하여 여러 도서가 읽혀졌다.
가정에서는 여성교육만을 한 것은 아니고 남아들에게도 교육을 행하였다. 특히 장남에 대한 교육은 철저히 이루어졌으며, 어려서부터 남성으로서의 역할, 가문의 대를 이을 사람으로서의 역할, 신하로서의 역할 등을 강조하였다.
평생교육을 위한 조선시대의 획기적 사건은 훈민정음의 창제였다. 그 전까지는 한문밖에 없어서 지식의 대중화가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인쇄술의 발달이 서책의 보급을 가능하게 하였으나 오랜 시간을 들여 한문을 배우지 않으면 쓸모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글의 창제는 제도교육에서 소외되어 있는 계층을 교육으로 가까이 이끌어가는 길을 터주었다.
이후로 ≪언해소학 諺解小學≫·≪언해사서 諺解四書≫ 등 한글화된 서적이 보급되고, 아울러 처음부터 한글로 쓰여진 서책들도 출판되어 교육의 대중화에 획기적 공헌을 하였다.
특히 평민생활을 소재로 한 평민작가에 의한 문학작품들의 등장은 평민문화, 즉 민중문화의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과거는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제도교육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관리선발제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문과 합격자의 연령이 30∼35세에 집중해 있었으며, 40세 이상의 합격자도 적지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과거제도는 이 시대에 평생학습의 풍토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전통사회의 교육은 처음에는 미분화된 교육에서 출발하여 학교와 시험제도가 발달함에 따라 천민과 평민은 점차로 소외되고 지배층이 배타적으로 장악하게 되었다.
제도교육은 층화(層化)하고 상급학교일수록 접근에 여러 가지 제한이 가하여졌다. 한편 평민들의 교육은 소홀해지고 국가유지에 필요한 교화의 필요에서만 교육이 이루어졌다. 전통사회의 일반적 특징은 제한된 학교교육제도로 발전한 것이다.
그리하여 교육은 대부분의 민중들과 멀어지고 교육내용도 생활과 유리되어, 평생교육이 아닌 학교교육이 지배하는 사회로 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교육은 여전히 학교가 지배하고 있다. 교육이 층화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법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학교는 기간학교(基幹學校)로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대학원으로 구성되며, 이른바 방계학교(傍系學校)로 공민학교·고등공민학교·기술학교·고등기술학교 그리고 초등교육에서 고등교육에 이르기까지 각급의 각종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방계학교는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기간학교와 다르다.
교육은 기간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방계학교와 그 밖의 교육기관들은 그에 대한 보완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학교는 아무나 설립, 운영할 수 없으며 <초중등교육법>과 <고등교육법>에 의거하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학교로 인가받은 경우가 아니면 학교라는 명칭을 쓸 수 없다. 즉, 학교는 법에 따라 그 권위가 인정되고 있으며 다른 교육기관들이 학교로 자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학교 이외의 교육기관은 발전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정부의 지원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로 학교 외 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어 이 부문이 크게 성장하였다. 특히 직업기술 분야가 확대되었다. 노동부 산하의 공공(公共) 직업훈련, 사업내(事業內) 직업훈련, 인정(認定) 직업훈련을 통하여 산업기술인력을 양성하고 있으며, 각 기업체들은 자체의 연수교육을 통하여 인력의 자질향상을 기하고 있다.
농촌지역의 직업교육은 농촌진흥청의 각종 프로그램과 새마을교육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 밖에 상업적 기술교육기관으로 각종 사설강습소(학원)가 있다. 사설강습소를 통하여 거의 모든 종류의 직업기술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수강생이 해마다 증가하였다. 1999년 현재 전국의 학원은 총 5만7000여개 소이며 연간 수강자는 약 682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 밖에 학원과 유사한 형태인 과외교습소도 약 4만7000개 소에 달한다. 교양 부문의 학교 외 교육도 계속 성장추세에 있다. 각종 사회단체·언론기관·대학 등이 성인들을 위한 교양교육에 참여하여 주부대상의 프로그램이 크게 증가하였다.
1999년에 제정된 <평생교육법>이 각급 학교의 평생교육활동을 권장하고 있어서 성인들을 위한 교양교육은 더욱 발전될 전망이다.
정부 통계에 의하면 1998년 현재 전국의 평생교육기관수는 20만5424개에 이르고 1년 동안 이 기관들을 이용하여 교육받은 연인원은 2765만7111명이다.
20세기가 학교교육 시대라고 하면 21세기는 평생학습 시대가 될 것이다. 평생학습 시대에는 성인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증가하는 동시에 학교와 대학들도 학생 이외에 주민과 일반 시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제공을 확대하게 될 것이다.
즉, 학교와 대학들이 경직된 제도적 틀에서 벗어남으로써 과거에는 학교에 취학할 수 없던 집단도 취학이 가능할 만큼 유연해지고, 전통적 교육과정 이외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성인들의 다양한 학습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개방될 것이다.
우리 나라의 교육제도 중 평생교육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방송통신고등학교·방송통신대학·산업체부설특별학급·개방대학 등과 같은 새로운 형식의 교육기관들이다.
이들은 모두 정규 중등학교와 대학이지만 입학전형·수업운영 등의 유연화로 종래의 전통적 학교와 대학에는 취학할 수 없는 사람들, 흔히 직장인들이 취학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학교들이다.
방송통신고등학교와 방송통신대학은 수업매체(授業媒體)를 방송과 통신을 중심으로 채택하고 산업체부설특별학급은 교실을 공장내부 또는 주변에 설치하고 수업시간을 공장의 작업시간에 맞추고 있으며, 개방대학은 입학자격을 직장인으로 제한하고 수업운영에 있어서 직장과의 유대를 강화함으로써 근로자들이 불편 없이 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것은 학교제도의 제도적 유연화라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제도 변화이며 앞으로도 계속 발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정보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원격교육방식이 광범하게 활용됨에 따라 방송고등학교와 방송대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원격교육방식을 채용한 ‘사이버 대학’들도 설립되고 있다.
이에 따라 종래의 학교교육과 학교 외 교육의 접목이 이루어져 평생교육체제의 구축에 한 걸음 다가서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평생교육에 관련하여 주목할 변화는 1999년 <평생교육법> 제정과 2000년 3월부터 이 법의 시행이다. 1980년 개정 <헌법>의 평생교육 정신이 실현된 것이다. <헌법> 제29조에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 나라의 교육제도가 평생교육의 이념에 따라 재편성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즉, 종래의 학교본위 교육제도에서 탈피하여 학교교육과 학교 외 교육을 묶는 새로운 하나의 교육제도를 구축해야 하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이 헌법 정신에 기초하여 1997년에 새로 제정한 <교육기본법>이 국민의 평생학습권을 선언하였고 <평생교육법>은 이 선언을 구체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이 국민의 평생학습권을 보장하고 실현시키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교육법>의 시행은 한국 교육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