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병실에서 삼겹살을 구워 소주와 함께 먹고 있다. /머니투데이DB
# A요양병원은 입원한 환자들에게 매일 뷔페식 식사를 제공한다. 통상 요양병원에는 저염식이나 소화가 잘되는 환자식 등으로 식단조절이 필요한 환자가 입원하는데 A병원은 병원 식당에 일반 음식을 차려놓고 환자가 종류대로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도록 뷔페식을 제공했다. 이는 입원한 환자들이 식단조절을 병행할 필요가 없을 만큼 멀쩡한 상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병원은 국민건강보험에서 지급하는 한 끼당 4000~5000원의 식사 단가로는 잘 차려놓은 뷔페식 식사를 제공할 수 없자 환자들이 마치 1~2인실 상급병실에 입원해 있는 것처럼 허위로 꾸며 상급병실료에 식대를 일부 포함해 청구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장기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치료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요양병원이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축내는 ‘구멍’으로 전락하고 있다. 요양병원은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시설과 다르다. 그런데도 많은 병상을 보유한 이른바 ‘모텔형’으로 지어놓고 입원이 불필요한 사람까지 환자로 유치해 진료 없이 숙식만 제공하거나 요양병원에 맞지 않는 뷔페식 식단으로 건강보험공단에 식대를 과다 청구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요양병원으로선 환자를 받으면 기본적으로 건강보험공단에서 급여 항목에 대해 돈을 받을 수 있는데다 실손의료보험을 보유한 환자에겐 건강보험이 지원하지 않는 수백만원대 비급여 진료를 제공해 수입을 올릴 수 있어 크게 남는 장사다.
◇우후죽순 요양병원, 병상 수 OECD 평균 7.6배=요양병원은 30명 이상의 수용시설을 갖추고 통상 암 등 중증질환으로 수술한 후 요양이 필요한 환자나 만성질환자, 노인성 질환자 등에 대해 입원치료를 하는 곳이다.
국내 요양병원은 2011년만 해도 988개로 1000개 미만이었으나 2016년 1428개로 늘어 5년간 1.4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병원은 1375개에서 1514개로 1.1배 늘어나는데 그쳐 국내엔 일반 병원과 요양병원이 수치상 비슷한 수준이 됐다.
주목할 점은 요양병원의 주요 환자인 노령인구 대비 요양병원 병상 수가 다른 국가 대비 국내가 현저히 많다는 점이다. 국내 65세 이상 인구 1000명 대비 요양병원 병상 수는 33.5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7.6배 많다.
지난 5년간 요양병원이 늘다 보니 진료비도 같이 급증했다. 국내 모든 의료기관의 65세 이상 건강보험 노인 진료비는 2008년 7조5000억원에서 2016년 19조2000억원으로 2.6배 증가한 반면 요양병원 진료비는 같은 기간 9900억원에서 4조7000억원으로 4.7배 늘어났다.
이처럼 국내에서 요양병원이 가파르게 성장한 이유는 일반 병원에 비해 설립 기준이 단순해 진입 장벽이 낮고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요양시설보다 환자들이 이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병원은 연평균 1일 입원환자 20명당 의사 1명, 2.5명당 간호사 1명을 둬야 하지만 요양병원은 입원환자 80명까지 의사 2명, 6명당 간호사 1명만 두면 된다. 인력기준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셈이다.
또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요양시설은 장기요양등급 1~2등급 환자만 이용할 수 있는데 비해 요양병원은 3~5등급 환자도 이용할 수 있어 가벼운 질환에도 요양서비스를 받기 원하는 환자들이 요양병원으로 몰린다. 실제로 요양병원에 입원이 필요 없고 일상생활이 가능한 신체기능저하군 환자가 2014년 4만3439명에서 2016년에는 5만8505명으로 34.6% 증가했다.
◇상위 10% 부자, 1년내 입원해도 병원비 523만원=국내 요양병원은 입원환자가 많을수록 병원 수입이 늘어나고 입원기간이 길어질수록 환자의 본인 부담금이 감소하는 구조다. 환자가 1년에 며칠을 입원하든 소득에 따라 연간 최소 80만원(저소득 1분위)에서 최대 523만원(고소득 10분위)만 병원비를 내면 나머지는 모두 건강보험에서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불필요한 장기입원이나 허위 질환으로 인한 사기성 입원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요양병원은 입원자의 35.6%가 180일 이상 입원하고 18%는 361일 이상 입원하는 등 일반 병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장기 입원이 많다.
지팡이만 짚을 뿐 거동하는데 불편함이 없는데도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요양병원에 머무는 환자도 있고 월소득이 1000만원이 넘는 상위 10% 고소득자도 월 50만원이 안 되는 돈으로 장기요양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괜찮은 요양병원을 골라 장기투숙한다.
허가받지 않은 병실을 환자에게 제공하고 요양급여를 타내는 등 보험사기도 기승을 부린다. 경기 가평에 위치한 B요양병원은 요양병원 근처에 건물 한 채를 임대해 무허가 병실로 사용하고 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급여 1억5000만원을 부정 수령하다 적발됐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요양병원이 허위로 진료비를 청구해 건강보험공단에서 부정 수령한 금액이 지난 한해에만 8000억원에 육박한다. 이는 건강보험공단이 부정 수급을 적발해 환수한 금액이기 때문에 실제 적발되지 않은 피해액은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입원이나 치료 횟수를 부풀리는 경우도 많다.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 시술인데 입원을 권하거나 입원 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민간 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입원을 한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꾸며 진료비와 보험금을 타내기도 한다.
경기 양평 소재 C요양병원은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암 수술 환자만 골라 유치한 뒤 환자들과 짜고 입원 일수나 치료 횟수를 실제보다 부풀려 보험사에 청구했다. 하루 입원했는데 열흘 이상 입원한 것처럼 꾸미는 식이다. 진료비와 입원비를 부풀려 받아 낸 보험금 차액은 환자들에게 지급해 생활비로 쓰게 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부당 청구한 보험금만 52억원에 달한다. 입원환자를 소개한 사람에게는 소개비로 10만원씩을 지급하기도 했다.
한 대형보험사 관계자는 “입원이 불필요한 환자인데도 6~7년간 입원확인서를 반복적으로 발급해 주고 외박이나 외출을 자유롭게 하는 등 사실상 허위 입원을 방조하는 병원도 많다”며 “요양급여로 건강보험 재정이 축날 뿐 아니라 보험금도 과다 청구돼 결국 보험료가 인상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