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공공형 일자리 축소… 대신 민간형 일자리 늘린다 노인단체 “공공형, 취약계층 노인들 유일한 소득보충 수단” 정순둘 교수 “고령층 생계 지원 강화해야”
내년부터 노인들이 일할 기회가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통해 공공형 노인 일자리 축소를 공식화했다. 취업이 힘든 고령자들이 당장 갈 곳이 없어져 복지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정부의 2023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보다 노인 일자리 수가 2만3000개 줄어든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6만1000개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신 민간·사회 서비스형 일자리를 3만8000개 늘리기로 했다.
공공형 일자리는 만 65세 이상 고령층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환경미화, 초등학교 등굣길 안전지킴이, 금연구역 지킴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한 달 평균 30시간가량 근무한 뒤 27만원을 받는다.
윤석열 정부는 긴축재정 기조 아래 예산 절감 방안 중 하나로 ‘질 낮은 일자리’라는 비판을 받아온 공공형 일자리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직접적인 단순 노무형 일자리는 소폭 줄이고, 민간형 일자리는 조금 더 늘어나는 흐름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부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민간형 일자리는 공공형 일자리와는 성격이 달라 수혜 대상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민간형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낮은 ‘신노년층’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이다. 실버카페 운영비를 지원하거나 노인을 고용하는 기업에게 인건비를 지급하는 방식이라, 더 높은 노동 강도를 요한다. 지원 연령도 만 60세 이상으로 비교적 낮다.
반면 공공형 일자리 정책 수요자는 상대적으로 더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표한 ‘2020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통계 동향’을 보면 공공형 노인일자리 참여자의 90% 정도가 70대 이상이었다. 성별로는 여성(43만명)이 남성(18만명)보다 2배 이상 많았고, 학력으로는 초등학교 졸업이 대다수였다.
노인단체들은 정부의 공공형 일자리 축소 방침을 두고 깊은 우려를 표했다. 생계에 허덕이는 취약계층 노인들만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은퇴자협회는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을 찾아 정책을 재고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6만1000개 공익형 노인일자리 삭감은 가혹하다”며 “6만1000명은 ‘최대 취약 노년층’이다. 이들은 더 좋은 어떤 다른 일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노인 일자리는 증가하는 노년인구에 비례해 오히려 늘어나야 한다”면서 “특히 연금제도가 빈약한 노년층에게 공공 일자리는 복지”라고 강조했다.
노인층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16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민간형 일자리는 주로 젊었을 때 좋은 직장을 가졌던 분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공공형 일자리는 직업을 갖기 어려운 가난한 노인들에게 소득 보충의 역할을 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며 “민간형 일자리를 늘리는 건 오히려 노인세대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민간형 일자리를 줄이고 공공형 일자리를 늘리는 쪽으로 가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민간형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성은 맞지만 고령층의 생계를 지원할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공형 일자리를 줄이면 당장 어르신들의 생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일자리 자체만 놓고 보면 공공일자리를 지원하는 것보단 생계에 보조적인 지원을 강화하는 대책을 강구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고령층에선 민간형 일자리를 구하긴 어려울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현재 공공형 일자리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민간형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이 맞다. 노인 일자리에 대한 생산성, 지속가능성 등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