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이른바 ‘웰다잉(Well-Dying)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좋은 죽음의 선택을 통해서 말기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잖다. 하지만 나는 몇 가지 점에서 이 법이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생각한다.
우선, 법의 명칭부터 그렇다. 이 법의 정확한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이다. 여기서 문제는 ‘호스피스·완화의료’라는 개념이다. 이 명칭은 영어의 ‘hospice and palliative care’를 번역한 것이다. 암 관리법과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오랫동안 써온 이 개념이 문제시되는 건 실체적·학문적 진실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호스피스·완화돌봄’으로 해야 맞다. 환자의 수요를 담은 실체적 진실과 의미가 제대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여기 죽음에 직면한 말기암 환자가 있다고 치자. 그가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이고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통증을 낮추어주는 의료행위가 필요하다. 이것이 완화의료다. 하지만 말기 환자는 통증보다 더 치명적인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이럴 때 그에게 필요한 건 심리적 돌봄이다. 말기 환자는 빈곤 등 사회·경제적 어려움에도 처하기 십상이다. 사회적 돌봄이 필요하다. 또한 그가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이기 위해선 영적 돌봄이 절실할 때도 많다. 호스피스·완화의료란 개념은 신체적 돌봄보다 어쩌면 더 절실할 수 있는 심리적·사회적·영적 돌봄을 포괄하지 못한다.
이번 법은 호스피스·완화의료라는 명칭을 쓰면서도 심리적·사회적·영적 돌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해 호스피스·완화돌봄의 개념을 오도하고 있다. 심리적·사회적 영역은 심리상담가나 사회복지사의 영역이다. 삶의 의미를 다루는 영적 영역은 성직자를 비롯한 영적 돌봄가(Carer)의 영역이다. 이들 영역은 결코 의료 영역에서 대신할 수 없다. 호스피스는 전인적 돌봄이다. 말기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가 다학제적 팀으로 이뤄지는 이유다. 정책 입안자들이 한번이라도 ‘내가 말기 환자와 가족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환자와 현장 종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명칭을 이렇게 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법안은 수요 중심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해 공익에서 멀어졌다.
이번 법의 또다른 문제는 자원봉사자의 역할을 배제하거나 영적 돌봄가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호스피스 현장에서 자원봉사자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암 환자를 위한 서비스는 요양보호사를 훈련해서 하는 것보다, 10~20년 봉사한 경험을 지닌 자원봉사자가 하는 게 훨씬 더 질을 높일 수 있으며, 더 경제적인 운영 형태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은 아예 법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영적 돌봄가의 역할에 대해 언급이 없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문제다.
다행스런 것은 이 법이 2년의 유예 기간을 거친 뒤 2018년부터 시행된다는 점이다. 비록 첫 단추를 잘못 끼웠더라도 고칠 시간은 충분하다. 오는 4월 총선 뒤 구성되는 20대 국회에서는 해당 법이 반드시 실체적이고 학문적인 진실에 맞게 고쳐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