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필수품 백신 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V3로 잘 알려진 안랩이 군림했던 국내 시장에 외국계, 그리고 중소 후발 주자들이 잇달아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국산 최초’라는 타이틀에 별다른 고민 없이 안랩을 선택했던 공공기관, 그리고 금융사 및 기업 시장에도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11일 보안 전문기업 잉카인터넷은 ‘백신 사업 강화’를 골자로 하는 올해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2010년 이후 대만과 일본, 미국 등 해외시장 매출 확대에 주력했던 잉카인터넷이 내수로 다시 눈을 돌린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해외 유수의 백신업체가 한국에 법인을 설립하는 등 백신 시장은 아직 여지가 충분히 남아 있다고 판단했다”며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제품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승부하겠다”고 다짐했다. 잉카인터넷은 이미 지난해 말 국방부 산하 클라이언트 PC 및 서버에 백신 방역 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이 기세를 몰아 V3 일색이였던 공공기관 및 금융기관 대상 영업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의지다.
또 다른 국내업체 SGA도 올해 백신 업계 주목 대상이다. SGA는 최근 금융사들의 정보 유출 사태 직후 차등적인 정보접근 통제를 가능토록 하는 ‘오쓰캐슬’ 신제품을 출시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카드사 정보유출사태처럼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인재를 막기 위해 강력한 정보접근통제시스템인 오쓰캐슬을 적극 홍보하고 다양한 보안컨설팅을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상반기에는 개인 및 기업용 PC 백신 소프트웨어 바이러스 체이서 새 버전도 3년만에 출시할 예정이다. SGA는 바이러스 체이서 신제품 출시와 함께 마케팅, 영업을 강화해 올해 공공 분야를 중심으로 점유율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동안 국내 시장과 거리를 두었던 해외 유수 업체들의 진출도 시작됐다. 러시아 최대 백신업체인 카스퍼스키랩이 지난해 말 한국 법인을 설립하고, 금융기관 및 대기업 대상 영업 강화를 선언했다. 카스퍼스키랩은 연 매출만 7000억원이 넘는 글로벌 백신업체로 국내 최대 회사로 손꼽히는 안랩보다 6배가 넘는 덩치를 가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몇 해 동안 각종 보안사고에 시달리며 관련 전문가들이 공공기관 및 기업에 대거 늘어났고, 그러면서 보안 소프트웨어 구매 패턴에도 변화가 시작됐다”며 “‘토종, 최초’ 같은 명성에 의존했던 관행에서 세계적인 업체들과 밴치마킹한 결과를 바탕으로 제품을 고르기 시작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무료 제품 범람을 이유로 그동안 국내 시장을 등안시 해왔던 해외 업체들은 ‘테스트베드’로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각종 사고가 빈번한 국내 시장에서 성공하면, 세계적으로도 통할 수 있다는 인식이 보안 소프트웨어 업계에 불고 있다”며 카스퍼스키랩을 시작으로 해외 업체들의 국내 시장 공략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국내 백신 시장은 연간 약 1000억 원 규모로 추산되며, 그동안 안랩이 V3 제품군을 필두로 50%가량을 점유해 왔다. 특히 유료 제품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공분야에서 안랩의 점유율은 최대 70%에 달한다는 추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