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로 老人 인구 늘어나자 부적격 요양·양로원들 난립 CCTV 설치 의무도 없어… '사각지대' 감시 제대로 안돼
#1. 서울 양천구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지내는 75세 폐암 말기 A할머니는 지난 2014년 5월 14일 새벽 '밤에 잠을 안 자고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남성 요양보호사로부터 얼굴과 등을 주먹으로 마구 맞았다. 고령의 이 할머니는 등뼈가 부러져 전치 8주 진단을 받았다.
#2. 서울의 또 다른 노인요양원은 '노인들이 기저귀를 너무 헤프게 쓴다'는 이유로 기저귀가 푹 젖어도 갈아주지 않고, 신문지를 덧대 기저귀를 채운 사실이 작년 4월 드러났다. 민원 신고를 받고 출동한 노인 보호 전문 기관은 "소변을 많이 보지 않도록 노인들의 식사량까지 줄인 사례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요양원 등 노인 시설에서 거주하는 노인들이 학대 행위로 신음하고 있다. 인간다운 노후를 보내기는커녕 인권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최근 펴낸 '노인 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이처럼 노인 시설 내 학대 건수는 2005년 46건에서 작년 251건으로 5.5배가량 대폭 증가했다.〈그래픽〉
◇사생활 침해 논란에 CCTV도 강제못해
이처럼 노인 학대 건수가 대폭 증가한 것은 급격한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늘면서 노인 생활 시설(노인요양원·양로원·노인공동생활가정 등)도 덩달아 증가했지만 부적격 요양원도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요양 시설 입소자 수(13만1997명)는 2008년(5만6370명)에 비해 2.3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손쉽게 노인요양원을 지을 수 있는 데다 노인에게 주먹질을 해대는 등 '함량 미달' 요양원 종사자들을 사전에 걸러낼 수 있는 방법도 없다는 문제점 등이 노출되고 있다. 게다가 노인들의 인권 보호 여부를 감시할 수 있는 CCTV도 '사생활 침해'라는 등 논란에 휩싸여 현재 설치 의무화가 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 때문에 노인들의 인권이 '사각지대'에 처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순둘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앞으로 평균 수명이 늘면서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을 돌보는 일은 그만큼 더 힘들어지고 노인 학대와 방임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면서 "외부 자원봉사자들이 입소 노인과 상담을 벌이는 식의 '외부 감시' 기능을 도입하고 정기적인 노인 학대 현황 모니터링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노인요양원 첫 전수조사
노인 학대 문제가 잇따르자 정부도 대대적인 노인 인권 실태 파악에 돌입했다. 복지부는 27일 열린 '국민 안전 민관 합동회의'에서 "오는 30일까지 전국 노인 생활 시설 5373곳을 대상으로 인권 실태 전수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노인 시설의 인권 상황을 전수 점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직접 현장에 나가 종사자와 입소자 인터뷰를 진행할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노인 인권 실태를 파악하는 차원이지만 만약 조사 과정에서 학대 사례가 발각되면 경찰 등에 협조 요청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 학대 문제뿐 아니라 요양원에 대한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야간 시간대 노인 돌봄 인력도 의무적으로 배치되도록 법령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복지부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