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보호시설 내 학대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폐쇄적인 보호시설 내 관리가 쉽지 않고 사업성을 따지다 보니 노인들이 받아야 할 서비스의 질은 낮아진다. 시설장과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근로자들의 인권의식 개선도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다. 결국 노인들은 방임·방치되기 일쑤다. 특히 노인들이 돌아갈 곳은 또 다른 보호시설뿐. 노인들의 고통은 반복된다. 15일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을 맞아 노인시설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경기 포천의 A요양원 사회복지사 김모씨(48)는 입소자(61·여)를 2012년 7월부터 8개월 넘게 매주 1~2회가량 성폭행했다. 처음 할머니가 약에 취해 움직이기 힘든 상태에서 성폭행을 한 뒤 상습적으로 범행했다.
가족들도 없이 기초생활수급비만 받아 생활하던 이 노인은 '요양원에서 쫓겨날까'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다. 그는 뇌수술을 받아 거동도 불편했다. 결국 다른 여직원에게 고통을 털어놓고 나서야 수사가 시작됐다.
김씨는 이 노인이 저항이나 신고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서로 좋아서 한 일"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결국 김씨는 철창 신세를 면하지 못했지만 할머니가 겪은 상처는 쉬 사라질 것이 아니었다.
◇노인시설 종사자 7.4%…'학대 가해자'=노인학대의 핵심 가해자 중 요양원 등 노인보호시설 종사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으로 인권의식이 부족하고 업무능력이 미숙한 노인보호시설 직원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노인들을 방임·방치하고 폭행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는 평가다.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4년 노인학대 가해자 3876명 중 7.4%(285명)가 요양보호사 등 시설 종사자로 집계됐다. 이는 2008년 학대 가해자 2.3%(62명)가 종사자들이었던 것에 비해 3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특히 노인들과 일상을 공유하는만큼 종사자들의 학대는 그 정도가 더 심각하다.
'사고 예방'을 명분으로 이뤄지는 신체구속은 빈번한 학대 사례다. 관련 법 개정으로 신체구속은 △불가피한 경우에만 △의사의 처방을 받아 실시하며 △부위·종류·횟수·방법 등을 기록해야 하지만 현장에선 작동하지 않는 '공염불'이다. 요양원에서 일하는 한 공익요원은 "노인들이 조금만 흥분하거나 말을 안 들으면 묶어두는 건 기본이다. '놀러가자'고 꾀어낸 뒤 침대 등에 묶는 걸 자주 봤다"고 말했다.
◇ '인식개선' 중요…단기적 제도보완 고민해야=노인시설의 열악한 처우는 학대 근절을 위한 최우선과제로 손꼽힌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요양원 보호사들의 월 평균 임금은 120만~150만원이고 하루 2~3교대 근무가 보통이다. 또 노인 2.5명당 요양보호사 1명을 배치해야 하지만 일부 대형 시설을 제외하면 한 사람이 7~8명을 돌보는 곳이 많다는 게 종사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2010년 45만4921명이던 요양보호사들은 2014년 26만6538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노인보호시설 수요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와 정반대다. 서울의 한 요양보호사는 "힘든데 대우도 못 받으니까 일을 시작할 때의 마음은 사라지고 불만만 남았다. 이런 마음으로 일하는 게 노인들께 죄스럽기까지 하다"고 토로했다.
'생계형' 종사자들이 학대 신고에 소극적인 것도 문제다. 학대로 영업정지나·시설폐쇄 등의 행정처분을 받게 되면 결국 자신이 회사 문을 닫게 하는 셈이기 때문. 종사자들에 대한 인권교육도 소홀하다. 한 보호사는 "알아서 인권 안내문을 읽도록 하거나 실제 교육 없이 '교육 받았다'는 서류에 서명만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실상을 전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종사자들의 '인권의식' 교육을 강화하고 처우 개선과 신고 시스템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금주 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는 "노인시설 학대는 축소·은폐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단순한 접근 방법으론 해결이 어렵다"며 "문제 파악과 동시에 제도적 문제점도 하나씩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노인시설 평가방법을 개정, 인권 관련 평가배점을 높이고 종사자들의 학대 신고시 '공익신고자'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설 학대는 가정에서보다 빈도수는 적지만 심각한 문제로 대두할 수있다"며 "종사자들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사회적 '공론화'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