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침한 불빛 아래 요양보호사 배연희(54)씨가 입을 열었다. “처음엔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내 부모처럼 잘 모시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우리는 환자 가족들이 시키는 집안일을 도맡는 가사도우미와 다르지 않았다.” 환자 보호자 신종순(62)씨는 “하루에 (요양보호사가 근무하는) 3시간 반을 빼면 나머지는 온전히 내가 돌봐야 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뇌경색으로 쓰러진 남편을 20여년간 돌봐왔다.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대부분의 돌봄은 자신의 몫이었고 힘에 부친 신씨는 결국 얼마 전 남편을 시설로 보냈다. 지난 4일 저녁, 요양보호사와 환자 보호자, 보육교사와 영유아 엄마,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가족 스무명이 짝을 이뤄 서울시청 시민청에 모였다.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인 이들은 그동안 쌓인 앙금을 해소하는 시간을 보냈다. ‘보편 복지’의 일환으로 요양·보육·장애지원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만 현실에선 돌봄 노동자와 이용자 모두 불만이다. 이용자들은 돌봄 노동자들이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불신의 눈초리를 보낸다. 반면, 돌봄 노동자들은 노동 강도에 견줘 보수는 적은데다 ‘가사도우미 취급’ 같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호소한다. 보육교사 이주영(35)씨도 아이 부모들한테 서운한 속내를 털어놨다. “요즘엔 엄마·아빠들이 아이의 모든 감정을 헤아려주길 바란다. 그러나 교사 1명이 20명 넘는 아이를 돌보는 상황에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자 다섯살 딸을 어린이집에 맡긴 장미순(42)씨가 “선생님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놓고도 마음 편히 직장을 다닐 수 없다. 선생님이 한분이라 아토피를 앓는 아이가 아프면 직접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처지”라고 했다. 장애인 아들을 둔 부모 역시 “1시간 남짓 걸리는 아들의 출퇴근을 돕기 위해 찾아오는 활동보조인을 구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하자, 고미숙 전국장애인활동보조인노동조합 사무국장은 “활동보조인도 대부분 50대 여성이라 출퇴근 시간대엔 그들 가족을 돌봐야 할 때가 많다”고 이해를 구했다. 자연스레 이들의 대화는 제도 개선 요구로 이어졌다. 아이 엄마 장미순씨는 “아이를 키우려면 무상보육만 필요한 게 아니라 부모의 노동조건도 좋아져야 한다. 애가 아프면 휴가를 주는 나라도 있다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며 적극적인 육아 정책을 요구했다. 요양보호사 배연희씨도 “어제까지 돌본 이용자가 시설에 들어가면 우리는 실직자 신세가 된다. 일하는 기간만이라도 생활임금을 보장해 달라”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