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요양원의 주말은 조용한 평일과 달리 면회 오는 자식들로 시끌벅적하다. 일요일인 지난 14일, 주중엔 직장일로 바쁜 자식들 열댓명이 요양원을 찾았다. 하지만 김끝녀(가명·89) 할머니는 혼자 시간을 보냈다. 건너편 침상의 치매 노인 가족들이 귤을 하나 건네줬을 뿐이다. 이 방에는 노환으로 들어온 김 할머니를 빼곤 전부 치매 환자다.
할머니는 비닐이 쳐진 창문으로 밖을 내다봤다. 요양원은 웃풍이 세다는 이유로 창문을 반투명 비닐로 막아놨다. 그게 없다면 창밖으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으련만, 바깥은 이미 탁한 회색이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온 것은 2년 전쯤이다. 서울 시내 한 지하철역의 역장을 지낸 남편과 사별한 뒤 자식들 집을 전전하던 할머니는 결국 반강제로 이곳에 끌려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자랑을 많이 했다. “키가 훤칠했어. 동네에서 김 역장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 할머니의 눈은 백내장으로 인해 희뿌옇게 변했지만, 같은 방의 치매 노인들과 달리 항상 자리를 깔끔히 정돈하고 머리도 곱게 빗었다. “원래 뭐 하셨어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포목점을 오래 했지”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자식들의 직업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첫째는 어디, 둘째는 어디’ 등등 일곱째 딸까지 순서를 줄줄 댔다.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는 물론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외웠다. 하지만 할머니는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았다. 치매 증상이 심한 노인들 가운데 일부도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데, 정신이 온전한 할머니가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않은 이유는 뭘까?
“며느리가 빼앗아갔어.” 늘 웃던 할머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할아버지 생전에 할머니는 둘째 아들과 함께 살았다. 3년 전 할아버지가 위암으로 세상을 등지자, 집을 둘째 아들에게 물려주고는 다른 아들 집을 전전했다. 1년 뒤 정든 원래 집으로 돌아온 날, 며느리는 “어머니, 이제 전화기 필요 없으시죠?” 하더니 전화기를 가져갔다. 아흔을 앞둔 노인이 전화가 뭐 필요한가 싶어 그냥 줬다.
며칠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이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편하고 좋지 뭐, 신세 안 지고…. 아들들이 공무원 하고 대기업에 다니느라 바쁜데 짐이 되기 싫어.” 김 할머니는 자식들을 두둔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섭섭함을 드러냈다. “야속하기도 하지.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한번 입이 터지자 요양원에 대한 불만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나는 사람하고 말을 하고 싶은데 여기는 죄다 치매 환자들이고, 밤에는 더 심심한데 그나마 요양보호사들이 잘 들어오지도 않아.”
귤을 까서 건네는 기자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나처럼 자식이 일곱이나 돼도 이런 데 들어와. (기자를 가리키며) 총각들 세대야 자식도 없으니 누가 돌보겠어. 결국 이런 데 오는 거지. 나중에 이런 데 오더라도 그냥 포기해. 그럼 편해져.”
요양원에서 지켜 본 노인들의 말년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를 깨우쳐준 김끝녀 할머니는 특별한 노인성 질환을 앓지 않았다. 단지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요양원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기자를 볼 때마다 자신의 기억력을 자랑하듯 가족사를 줄줄 읊었다. “내가 자식이 일곱이야. 아들 다섯명에 딸 둘.” 기자는 처음에 치매환자가 아닐까 의심했다. 주기적으로 자식의 수와 가정사를 확인했지만 그의 답변은 한결 같았다. “치매는 없으시죠?”라는 질문에 할머니는 “치매는 무슨 치매, 정신은 30대야”라며 웃었다.
처음에는 “시설에 만족한다”던 할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요양원의 성의없는 돌봄 과정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 남자 요양보호사들이 자꾸 와서 옷을 벗겨 갈아 입히고 기저귀를 가는 과정도 불편해했다. “그래도 내가 여잔데 자꾸 남자들이 와서 곰살맞게 구니 창피하지.” 할머니가 말했다. 김 할머니처럼 일반 가정에서 자식들과 살 수 있을 정도의 멀쩡한 노인들이 요양원엔 많았다. 김창국(가명·96) 할어버지도 자기 방에서 매일 서예를 할 정도로 정신이 또렷했다. 이런 노인들에게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이다.
삼키기도 전에 또 들이미는 밥
한 할머니의 기도가 막혔다
“보호자…119…산소호흡기”
그 뒤 111호실로 거쳐가 옮겨졌다
가망없는 노인들의 방이었다
■ 상냥함과 공손함이 실종된 ‘케어’ “남자가 참 상냥하게 잘도 먹이네.” 9일 오전, 중증 치매를 앓는 맹임생(가명·86) 할머니가 ‘식사 돌봄’을 도맡은 기자를 보고 첫 마디를 던졌다. 맹 할머니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활동이 불가능한 중증 치매환자다. 씹는 힘도 약해 칼로 다진 반찬을 겨우 삼킬 정도다. 요양보호사가 맹 할머니의 식사 돌봄을 기자에게 부탁한 이유도 먹는 속도가 제일 느리고 시간이 많이 소비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1주일 정도 지난 뒤였다.
맹 할머니는 요양보호사들 사이에서도 ‘노동력’이 많이 들기로 소문났다. 대개 오전 11시30분에 시작되는 점심식사 때 맹 할머니의 식사에는 30분 이상이 걸렸다. 12시30분부터 30여분 간 휴식 시간이 주어지는 요양보호사들에게 맹 할머니는 기피대상 1호였다. 그래서 자원봉사자처럼 노동력을 덜 수 있는 인력이 생기면 맹 할머니를 제일 먼저 맡기는 게 그 곳의 관행이었다. 에이(A)동 고참격인 박 팀장(가명)도 이를 잘 알았다. 처음으로 40여분에 걸쳐 맹 할머니에게 힘들게 밥을 먹인 기자에게 박 팀장은 “이 할머니가 좀 오래 걸려”라며 격려했다.
인생의 황혼을 느리게 즐기고픈 노인들은 빠른 식사를 강요당했다. 점심시간 동안 다른 노인들의 식사 돌봄 상황을 보니, 요양보호사들이 노인들에게 일반인보다 빠른 속도로 밥을 먹이는 광경이 자주 눈에 띄었다. 한 치매노인은 본인이 식사 속도 조절을 못하는데도 요양보호사가 계속 꾸역꾸역 밥을 입에 들이밀었다. 그렇게 몇 분 만에 식사 돌봄을 끝내야 요양보호사는 휴식 시간을 늘릴 수 있다. 요양보호사를 탓할 문제는 아니다. 열악한 요양보호 노동 환경이 낳은 결과다.
김끝녀 할머니가 기자를 칭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개 일처럼 밥을 먹이는 과정에서 상냥함과 공손함이 실종되지만 신출내기 자원봉사자인 기자는 달랐던 탓이다. “다른 분들은 이렇게 안 먹이나 봐요?” 기자가 묻자 김 할머니는 빼꼼히 열린 방문을 슬쩍 쳐다봤다. 기자가 눈치를 채고 문을 닫자 김 할머니는 대뜸 “여기서 이렇게 상냥하게 밥 먹이는 거 처음 봤네”라며 기자를 쳐다봤다. 성의없는 요양보호시스템의 현실을 할머니는 또렷한 정신으로 목격하고 있었다.
자식 많아도 정신 또렷해도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들어와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
■ 119가 와도 ‘우왕좌왕’ 4일 점심시간 때 응급 상황이 벌어졌다. 이봉래(가명·84) 할머니는 가래로 인한 호흡 곤란이 자주 발생해 늘 주의를 필요로 했다. 이날 갑자기 요양원 안이 술렁였다. 상근하는 간호사가 “석션, 석션”(기도에 막힌 이물질을 빨아들이는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