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동네마다 託老所(탁로소·노인을 낮 동안 돌봐주는 곳)·요양 지원센터… 내 집에서 '마지막 10년' 보내
민영수
201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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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英의 요양 시스템 '日생활 14년' 한국 부부가 본 일본 어르신들의 日常
日, 노인 혼자 생활할 수 있게 연금·요양정책 탄탄한 지원 한국은 갈수록 요양시설 찾아…
- 가족 대신 기술로 '노인 케어' 전기포트에 통신기능 갖춰, 사용 때마다 자녀에 문자 가
선진국의 성공담과 실패담을 고루 배워야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 20년 먼저 고령화를 겪었고, 영국은 국민 개개인의 마지막 나날이 편안하기로 소문난 나라다. 일본에서 14년간 산 류재광 삼성생명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 부부, 영국 출신 앤드루 새먼 포브스지 서울 특파원이 각각 체험한 일본과 영국의 '마지막 10년'을 소개한다.
일본 도쿄 서쪽 다마 신도시. 1970년대 일본 인구가 매년 100만~150만명씩 늘 때, 도쿄 인구를 분산하려고 세웠다. 하지만 30년 뒤 우리가 이사 갔을 땐 아이들이 없어 놀이터에 풀이 무성했다. 원래는 가게가 스무 곳쯤 있었을 근린상가에 식품점·주류(酒類) 가게·미용실 세 곳만 영업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몇 년째 셔터를 내린 채였다.
한때는 단지 주위에 초등학교가 네 곳이나 됐지만 우리가 갔을 땐 두 곳으로 줄었다. 아침저녁으로 유치원 차 대신 '탁로소'(託老所·노인을 낮 동안 돌봐주는 곳) 버스가 단지를 돌았다.
지난 6월 일본 오카카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10년째 치매를 앓는 사카이 아사요 할머니가 낮 동안 데이케어센터에 갔다가 돌아와 딸의 마중을 받고 있다(사진 위). 센터에 있는 동안 직원들이 할머니에게 화장도 해주고(사진 아래 왼쪽) 목욕 시중도 들어준다(사진 아래 오른쪽). 노인이 늘어나면서 일본에서는 데이케어센터 버스가 유치원 차처럼 아파트 단지를 도는 모습이 일상화됐다. /블룸버그
한국에 재개발 열풍이 불 때 다마 뉴타운은 조용했다. 처음엔 '이 사람들은 왜 돈 벌 생각을 안 할까?' 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게 답이었다. 재개발을 하려면 가구 수를 늘려서 수익을 내야 한다. 고령화는 그런 발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가구 수를 늘려봤자 들어올 사람이 없다. 주민들도 대부분 연로한 은퇴자였다. "공사비도 못 뽑는데 그냥 살지 뭐하러…" 하는 분위기였다. 동네도 주민도 서서히 쇠락해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개개인의 삶은 탄탄하게 안정되어 있었다. 다음 세대로 가면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지금 일본 노인들은 이혼·퇴직·사별에 끄떡없었다. 고속성장 시대에 수십 년간 공적 연금을 부은 덕분이었다.
나와 친한 다나카 할머니는 보라색으로 염색하고, 항공사 승무원처럼 멋지게 스카프를 둘렀다. 할머니는 자식이 셋이지만 혼자 살았다. "그게 더 행복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연금이 있으니 굳이 자녀와 살 이유가 없어졌다"고 했다.
물론 연금이 가족의 온기(溫氣)까지 대신하진 못했다. 남편과 사별한 야마다 할머니 댁엔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자녀가 사준 전기포트였다. 통신기능이 들어있어, 할머니가 찻물을 끊이거나 외출 모드로 돌려놓는 상황이 자녀의 휴대전화에 문자로 전송됐다. 그때 나는 '자식 대신 전기포트가 효도하다니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적어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녀들이 곧바로 확인할 수는 있다.
중산층이 아닌 노인도 안심하고 살아갔다. 70대 중반 다가와 할아버지는 평생 막노동하면서 혼자 살다 기초생활 수급자가 됐다. 거동이 불편해지자, 지자체 복지 담당 직원과 요양보호사가 찾아와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는 데 필요한 절차를 세세히 챙겨줬다. 덕분에 다가와 할아버지는 낯선 요양시설에 가는 일 없이 원래 살던 임대주택과 이웃 곁에 머물렀다.
우리가 일본만큼 고령화됐을 때, 우리의 마지막 10년도 이만큼 편안할까. 동네에서 늙어가는 일본 이웃을 볼 때마다 나는 몇 년 전 요양시설에서 별세한 할아버지가 떠올라 마음이 저렸다. 20년 전까지 한국은 한 해 사망자 73%가 집에서 숨졌다(1992년 23만6162명 중 17만2009명). 이제는 반대로 병원·시설·복지기관에서 숨지는 사람이 74%다(2012년 26만7221명 중 19만781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