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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

  • 민영수
  • 2012-06-02
  • 조회수 1512
요양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
 

글: 김경식 60세

요양원에서 있었던 일중 기억나는 일 몇 가지를 얘기해볼까 한다.
2006년 처음 남양주의 수동요양병원에서 생활할 때의 일이다. 입소해 보니 나보다 먼저 방을 쓰고 있던 사람이 같은 식도암 환자였다. 초기라서 수술을 하고 이곳으로 부인과 함께 요양을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매사에 짜증을 부렸다. 부인은 남편의 온갖 요구와 불만에 스트레스를 받아 몹시 힘들어하셨는데 저 인간이 회복되고 나면 나는 꼭 이혼하겠노라고 말했다. 같은 식도암에 한방을 쓰다 보니 가까워져서 하루는 그와 함께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심스럽게 지금은 힘드시지만 그래도 같이 계시는 사모님께 감사하고 잘해드리라고 말씀드렸다.
 
그는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지만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부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이 내 경험을 말씀드렸다. 나는 8년이라는 세월을 암환자로 지내다보니 나 혼자는 늘 암환자인데 시간이 가면서 가족들은 무뎌져가더라. 그래서 가족들이 조금만 서운한 말을 하면 큰 상처를 받게 되고 아내에게 함부로 말하는데 그러면 결국 아내도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 한 번 화를 내면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 몸도 상처를 입는 것 같다. 암 치료가 꼭 약 먹고 수술만이 아니라 이렇게 화 안내고 병든 내 옆을 떠나지 않고 늘 지켜주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도 치료다. 이렇게 조곤조곤 말씀드리니 그는 알았노라며 부인에게 조금은 살갑게 대하려 애쓰셨다.

같은 암환자가 해주는 말은 보호자나 가족 등 암환자가 아닌 사람이 하는 말보다 저항감이 덜하다. 특히 같은 암이라면 더욱 그렇다. 혼자만 암환자로 지내다보면 암환자 아닌 가족들이 언제나 암환자 눈치만 보고 암환자는 점점 자기연민에 빠져 물 한 컵조차 자기 손으로 떠다 먹는 법이 없고 늘 보호자에게 불만을 토로하게 된다. 심해지면 자신의 병을 가족 탓을 하거나 사람이 까칠하고 못되게 변하기도 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려고 들지 않고 꼭 누군가가 수발을 들어주고 함께 해줘야 움직이려고 드는 나쁜 습관이 생긴다.
 
나는 처음 암 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면 요양병원이나 시설 등에서 암환자와 함께 지낼 것을 권한다. 다른 가족들에게도 시간을 주고 암환자는 다른 암환자들과 지내면서 위안도 받고 용기도 얻을 수 있다. 나보다 훨씬 더 심한 상태였는데도 건강해진 암환자도 만날 수 있고, 지금의 상태가 나쁜데도 불구하고 화를 내지 않고 웃고 늘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이상한 암환자도 만나게 된다.

물론 늘 불만에 가득 차 있고 매사가 마음에 안 들어 투덜대는 암환자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신기하게도 고참 암환자의 타박이나 충고는 야속하지 않다. 암환자가 아닌 가족이나 친구가 그런 말을 했으면 마음이 상해서 속으로는 네가 암에 한 번 걸려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 하고 삐딱한 생각이 들지만 성실하게 투병하는 고참 암환자가 하는 말은 같은 말이어도 수긍이 되고 그래, 나도 한번 해보자하는 생각이 든다. 암환자가 되어 동병상련(同病相憐)만큼 사무치게 와 닿은 말도 없었다. 
 
안성에 있던 요양원에서 지낼 때였다. 이곳은 병원 위에 산이 있어서 매일 산에 올라가 웃고 소리 지르고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그런데 문병 온 다른 가족들이 말하길 이 병원에 미친 사람이 있다면서요 하는 것이 아닌가. 들어보니 내 얘기였다. 멋쩍어 하는 내 대신 다른 환자들이 미친 사람이 아니라 암환자인데 너무 건강해서 박장대소 웃으며 노래하고 그렇게 생활한다고 말해주었다. 이런 일은 요양지를 옮길 때마다 반복되었다. 충주에 있는 요양원에서 지낼 때에는 길을 걷다보면 동네 사람들이 슬슬 나를 피해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저기 미친 사람이 온다 하면서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늘 내 입으로 나서서 얘기하기가 쑥스러워 잠자코 지내면 같이 생활하는 암환자가 오해를 풀어주곤 하였다. 저기 미친 사람이 아니구요. 암환자인데 웃음치료사도 해서 저렇게 웃고 다닙니다하고 말이다. 
 
한 요양원에서 만난 신 씨는 암환자는 아니고 신부전에 당뇨 환자였다. 6시간마다 투석을 해야 했다. 그곳에서는 환자들에게 야채스프를 만들어 먹게 하고 커피관장도 해주었다. 커피관장을 커피를 끓여 항문에 주입하고 15분쯤 후에 배설하는 것이다. 제독 효과와 간 해독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여자 선생이 해주었는데 나는 처음 한 번만 받고 다음부터는 스스로 하였다. 신 씨는 장이 안 좋아 그런지 관장을 하게 되면 주입하자마자 참지 못하고 배설하여 침대와 선생님 옷자락에 인분세례를 하기 일쑤였다.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이런 식이니 선생은 선생대로 신 씨가 오면 짜증이 나고 신 씨는 나도 환자인데 싶어 서운해 했다. 아픈데 참지 못하니 오죽하랴 싶어 내가 해주겠다고 하였는데 역시 나도 여러 번 인분세례를 받았다. 그 덕분에 우리 두 사람은 친해지게 되었고 나와 함께 한동안 요양생활을 했다.
 
나는 긴 요양생활을 하면서 옮겨 다닐 때마다 그곳에서 새로운 배울 거리를 찾곤 했다. 한곳에서는 벌침을 배웠다가 재미를 붙여 서울로 3개월가량 교육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고, 암 치료에 도움이 될까 해서 웃음 치료를 배우다가 암환자에게 나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웃음치료사 1급 자격증을 땄다. 알지도 못하는 각종 산나물이며 약초를 알게 되고 산속에 무궁무진하게 많은 약이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산 더덕의 그 진한 향내, 산삼 못지않은 산도라지, 높이 달린 겨우살이를 간신히 손에 넣었을 때의 그 기쁨. 가장 행복한 것은 이 귀한 것들을 감사히 받고 옆의 아픈 사람들과 함께할 때이다. 좋아하는 보호자나 환자가 웃는 모습을 보면 왠지 으쓱하고 나도 의미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암환자가 되어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대우받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난 아프니까, 난 암환자니까 하고 가족이나 친지가 잘해주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되지만 점차 시간이 가면서 무슨 암환자가 된 것이 대단한 벼슬이나 된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대우해줄 것을 요구하고 자신의 병을 크게 여기게 되어 급기야는 내 몸의 건강보다는 내 몸의 암에게 더 높은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암환자가 지나치게 위축되어 가족에게 폐가 될까봐 아픈데도 말도 못하고 괜찮다고 하면서 암환자인 것을 감추려 드는 것도 문제지만 암을 벼슬삼아서도 안 된다. 그래서 봉사가 중요하다. 대우를 받고 떠받들어 기분 좋은 건 잠시뿐이지만, 봉사는 어떤 약보다도 스스로를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내가 아직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암환자에게는 정말 중요하다.

봉사를 대단히 여길 필요도 없다. 그저 아침마다 가족의 구두나 신발을 닦아주어도 되고, 요양소이나 병원에서는 물 한 컵이라도 떠다주면 된다. 아내가 닦아놓은 신발을 신고 나가다 뒤돌아서 손을 흔들거나 움직이기 힘든 환자가 시원하게 물을 마시는 그 모습을 보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해질 것이다. 이것은 정말이다. 의심스러우면 가족이 잠에서 깨기 전에 현관에 놓인 신발을 닦아보길 바란다.

 
월간암 201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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