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부산 동구 초량동의 한 사무실에서 동구노인종합복지관 과일도시락 배달을 신청한 직장인이 반갑게 도시락을 받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직장인 이지은(28·여)씨는 퇴근길에 꼭 부산 연제구 연산동 새부산주유소에 들러 주유를 한다. 기름값이 다른 곳에 비해 특별히 저렴한 건 아니지만 60~70대 어르신들을 고용하고 있는 곳이라 어쩐지 노인 일자리 제공에 일조한다는 뿌듯함이 들기 때문이다. 노인을 고용한 업소나 노인 사업장을 찾는 '착한 소비'가 뜨고 있다. 단순히 가격이나 품질을 비교하는 것을 넘어 생산 과정의 윤리까지 챙기는 이른바 윤리적 소비의 성장과 맞물려 같은 값이면 노인 일자리 제공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소비를 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지난 2005년 처음 사업을 시작해 60~70대 노인 11명을 고용하고 있는 부산 동구노인종합복지관 과일도시락 배달 사업의 경우 월평균 정기회원 수가 2005년 32명, 2006년 45명, 2007년 75명, 2008년에는 118명으로 3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어났다. 매출액도 2005년 1천486만원이던 것이 2006년 2천340만원, 2007년 4천977만원으로 부쩍 늘었다.
2년 넘게 과일도시락을 주문해 먹고 있는 직장인 박진규(33)씨는 "우선 수익보다 어르신들 일자리를 위해 하는 사업이다 보니 가격대비 도시락의 질이 높고 어르신들의 일자리에도 보탬이 됐다는 만족감이 있다"고 말했다.
동구노인종합복지관은 도시락 구입자의 연령대가 20~30대 초반인 것을 감안, 다음주 중으로 부산진구 양정동 대학가에 과일도시락 테이크아웃점을 추가로 열 예정이다. 이 테이크아웃점이 고용하게 될 노인은 모두 8명에 이른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서구 서대신동 서부경찰서 근처 '콩마을 푸른밥상' 식당(서구시니어클럽 운영)도 어르신들이 직접 국산콩을 이용해 두부를 만드는 데다 직접 요리와 서빙을 한다는 입소문이 나 손님이 많은 날은 점심시간에 줄을 서서 밥을 먹어야 할 정도.
식당을 자주 찾는다는 전민수(50)씨는 "유기농 웰빙 밥상이어서 믿을 만하고 어르신 한 분이라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좋게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인 고용 창출이 가장 많이 이뤄진 곳은 주유소.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전국적으로는 60세 이상 노인 주유원 2천588명이 근무 중이며 부산지역에서 근무 중인 노인 주유원 수는 207명에 이른다. 이는 부산지역 전체 주유원 2천446명의 8.5%에 해당하는 수치.
각각 10년째와 3년째 되는 노인주유원 2명을 고용하고 있는 한 주유소 관계자는 "처음엔 젊은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아 어르신을 고용했는데 이직률이 낮고 심야시간에도 믿고 맡길 수 있어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생활과학연구소 관계자는 "노인인구 비율이 높은 부산에서 이 같은 소비가 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고 또 장려해야 할 일"이라면서도 "노인 고용 직업군이 주유원 등 단순노무직에 치우쳐 있는 점은 한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