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72%가 만성질환… 불안한 노후 ·치료비 걱정에 ‘고통’ ㆍ사회문제화 심각… 연금인상 등 ‘돌봄정책’ 질 향상 절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사는 박모씨(70)의 가슴에는 아직도 수술자국이 선명하다. 사업 실패 후 건설현장에서 무리하게 일하다 12년 전 심혈관 질환으로 쓰러져 대수술을 받은 흔적이다. “이런 몸으로 힘든 일은 못한다”면서도 홀로 사는 그로서는 일손을 놓을 수 없다. 아침마다 2시간 동안 지하철에서 무료신문을 걷고 폐지를 수집해서 버는 돈으로 근근이 생활한다.
만성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강모씨(73)도 조금만 말하면 숨이 찬다. 동사무소 취로사업과 기초노령연금을 더해 한 달 40만원을 손에 쥐지만 방세와 공과금 등을 내고 나면 생활이 빠듯해 치료를 받을 수 없다.
그는 “30년 전에 집을 나와 가족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지만 자식이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도 남의 얘기”라며 “얼마나 살겠냐만, 사는 동안만이라도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만성질환과 노후불안으로 고통받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7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에 의뢰해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806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인권현황 실태를 발표했다. 조사에서 71.8%는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42.1%는 질병으로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노인들은 자신이 병들었을 때 돌봐줄 사람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불안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전체의 39%가 치료비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35.1%(복수응답)는 ‘필요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이, 연령이 높을수록, 학력과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현재 앓는 질병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노인의 비율이 높았다.
조사를 진행한 서울대 사회학과 박경숙 교수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포함해 노인 돌봄정책에 대한 지속적인 보완과 개선을 통해 돌봄의 질을 향상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노인 문제가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대두됨에 따라 연금액 인상 등 제도적인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빈곤사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어버이날을 앞두고 지난달부터 노인들에게 ‘기초노령연금을 더 많이 올려 달아드리자’는 카네이션 캠페인을 시작, 한 달 만에 1만8000여명의 시민들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이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09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며 “노인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시민·사회단체와 야4당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기초노령연금액 인상을 요구했다.
이들은 “기초노령연금법상 연금 인상을 위해 2008년부터 설치됐어야 하는 국회 연금제도개선위원회가 한나라당의 반대로 아직 설치되지 못했다”며 “연금이 매년 평균치인 0.25%씩 인상됐다면 현재 단독노인은 1만3000원, 부부노인은 2만1000원씩 매달 더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