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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마을에 ‘돈 단풍’ 들었네

  • amargi
  • 2008-11-16
  • 조회수 7742
노인 마을에 ‘돈 단풍’ 들었네 [일본 ‘나뭇잎 비즈니스’의 기적] 요리 장식 나뭇잎 파는 ‘이로도리’… 칠순 노인들이 연 30억원 매출
1. 거의 매일 생산자들에게 격려의 팩스를 보내는 ‘이로도리’의 요코이시 부사장.
2. 온도가 관리되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고 있는 단풍.
3. 나뭇잎으로 장식된 일본 요리.

이코노미스트 요즘 일본 경영자들 사이에서는 연 매출 3억 엔에도 못 미치는 작은 회사 하나가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전국 레스토랑이나 요릿집을 상대로 장식용 나뭇잎을 판매하는 ‘이로도리(색채)’라는 이름의 회사다.
 
이로도리 본사가 있는 곳은 도쿠시마(德島)현 가쓰우라(勝浦)군 가미가쓰(上勝) 마을. 도쿠시마 공항에서 남서쪽으로 차를 타고 1시간 반 정도 비탈진 산길을 올라가야 닿을 수 있는 인구 2000명 남짓한 작은 산골이다.
 
그나마 마을 인구의 절반이 65세 이상 노인인 전형적인 노령 마을이다. 이런 산골에 전국 각지에서 지방의원 등 시찰단이 쇄도하고 있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2006년에는 마을 인구의 2배 가까운 3957명이 이곳을 다녀갔을 정도다. 대체 어떤 회사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을까? 얼마 전 이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요코이시 도모지(橫石知二)부사장을 도쿄에서 만났다.
 
“몸이 열 개 있어도 모자랄 판입니다. 회사도 경영해야지, 강연회에도 불려 다녀야지…. 그래도 회사를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야지요.”
 
요코이시 부사장은 그날도 도쿄 지요다방송회관에서 수백 명의 CEO를 상대로 특강을 한 후 잠시 짬을 냈다. 도쿠시마 출신인 요코이시 부사장이 가미가쓰 마을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9년. 현립 농업대학교를 졸업한 후 영농지도원 자격으로 농협에 취직해 이곳으로 발령받은 것이었다. 당시 가미가쓰는 활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절망의 마을이었다.
 
그랬던 마을이 지금은 완전히 활기를 되찾았다. 이로도리와 계약한 평균 연령 70세의 생산자들은 연봉 200만 엔쯤은 너끈히 벌어들이고 있다. 개중에는 1000만 엔 이상의 수입을 올려 집을 새로 지은 사람도 있다. 마을을 떠났던 젊은이들도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사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가.
 
영농지도원 요코이시가 가미가쓰 마을에 나타나자 사람들은 “너 같은 놈이 우리에게 뭘 해줄 수 있어” “가서 보조금이나 타 와”라는 식의 핀잔만 계속 퍼부었다. 사람들의 억눌린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것이었다. 어떡하든 마을 사람들의 의식을 바꿔보려던 젊은 영농지도원 요코이시의 의지는 번번이 꺾이곤 했다.
 
요코이시가 이 마을에 온 지 2년째 되던 해, 가미가쓰 마을에 결정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사상 최악의 한파가 몰아쳐 마을의 주요 수입원 노릇을 했던 귤나무가 모두 죽고 만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요코이시는 마을에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줄 새로운 사업을 찾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노인들만 사는 작은 산골에서 그런 사업을 찾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요코이시가 지금의 ‘나뭇잎 비즈니스’를 찾아낸 것은 새 사업을 모색하기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해였다. 오사카의 청과물 시장에 야채를 출하하고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파 스시(초밥)집에 들렀다. 그곳에서 한 여자 손님이 스시에 장식된 붉은 단풍잎을 보고 “예쁘다” 소리를 연발하며 손수건에 싸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요코이시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예쁜 나뭇잎이라면 가미가쓰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걸 주워 요리 장식용으로 내다 팔면 돈이 되겠다.”의기양양해 마을로 돌아온 요코이시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분명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요코이시는 마지못해 동참한 주부 4명과 함께 1987년 ‘이로도리’라는 브랜드로 장식용 나뭇잎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뭇잎은 좀체 팔리지 않았다. 원인이 뭘까? 요코이시는 전국 요릿집을 찾아다니며 장식용 나뭇잎인 ‘쓰마모노(つまもの)’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손님 행세를 하며 요릿집에 들어가 어떤 요리에, 어떤 나뭇잎이, 어떤 형태로 사용되는지 철저하게 조사하며 메모했다.

“요릿집에 드나들면서 쓴 돈을 모두 합치면 작은 집 한 채는 살 겁니다. 그것 때문에 마누라에게 핀잔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요코이시의 희생적(?)인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뭇잎 비즈니스’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뭇잎이 팔리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생산자(가미가쓰 마을주민)들이 제품(나뭇잎)의 품질관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었다. 산에서 수확한 나뭇잎의 크기나 형태, 색깔을 정돈하지 않은 채 포장해 출하했기 때문에 상품 가치가 떨어졌던 것이다.
 
요코이시는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소비자(요리사)들이 그릇의 크기나 요리에 따라 같은 종류의 나뭇잎이라도 색깔이나 크기, 품질을 선별해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하나의 박스 안에 색깔이나 크기가 다른 여러 종류의 나뭇잎이 포장되어 있으면 사용하기 불편했던 것이다.
 
또 하나, 요리사들은 나뭇잎을 쓸 때 계절감을 중시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예컨대 장식용 벚꽃은 자연에서 피는 것보다 한 달 반 정도 앞서 요리에 올린다. 산에서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장식용 벚꽃의 값은 크게 떨어지고 만다. 요코이시는 요릿집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색깔, 모양, 크기 등 출하 때의 중요한 요소를 일러스트로 만들어 상품의 균질화를 꾀했다.
 
또한 생산자들에게 산에서 제품을 수확할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재배하게끔 했다. 비닐하우스를 활용해 나뭇잎이 성장하거나 꽃이 피는 시기까지 조절하며 가장 값이 비쌀 때 출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998년에는 생산자 집에 PC를 도입해 POS(판매시점 정보관리) 시스템까지 구축했다. 산골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전에는 어떤 상품이 얼마에 거래됐는지 하는 시황은 팩스로 알려줬다. 그러나 바코드와 PC 도입으로 보다 신속하게 시황을 알게 됐을 뿐 아니라 회사 측에서 제공하는 수요 예측을 보면서 생산과 출하까지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단풍잎은 공급이 많아 단가가 떨어졌기 때문에 다른 나뭇잎을 출하하는 편이 낫겠다”는 식의 판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PC는 생산자들에게 의욕을 불어넣는 역할도 했다. 가미가쓰 마을의 생산자 중에서 자신의 판매 순위가 몇 위인지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생산자들의 경쟁심에 불을 붙였다. 물론 PC 프로그램과 조작 장치는 노인들이라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글씨는 돋보기 없이도 볼 수 있을 만큼 크고, 마우스 대신 게임용 볼을 사용한다.
 
요코이시는 전국 요리점을 샅샅이 훑고 다니며 판로를 개척했다. 이런 노력이 언론의 취재거리가 되면서 자연히 홍보 효과까지 거두게 됐다. 제품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장식용 나뭇잎 한 팩이 평균 250엔 정도에 팔린다. 연간 매출액은 약 2억5000만 엔. 시장 점유율은 80%나 된다.
 
요코이시에게도 잠시나마 마음이 흔들린 시기가 있었다. 아내와 상의 끝에 1996년 근무처인 농협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해 보려 하자 나뭇잎 생산자 전원이 그만두지 말라는 탄원서에 자필 서명과 도장을 찍어 집으로 몰려온 것이었다. 요코이시 부사장은 “차마 이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요코이시는 1999년 가미가쓰초가 70%를 출자해 설립한 제3 섹터 ‘이로도리’의 부사장에 취임했다. 이 회사의 주요 수익원은 194명의 생산자에게서 받는 수수료(출하액의 5%)다. 설립 이후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한때 노인들만이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가미가쓰 마을은 모든 가구에 광통신망이 깔린 하이테크 마을로 변신했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 일본법인과 가미가쓰 마을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지역진흥에 관한 각서’를 체결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가미가쓰 마을의 IT화를 지원하면서 그 노하우를 일본 전국의 마을에 퍼뜨릴 계획이다. 나뭇잎 비즈니스는 일본 사회 전체의 고민거리인 고령화 문제 해결에도 실마리를 제공했다.
 
사실 가미가쓰의 고령화율은 도쿠시마현 전체에서 1위다. 하지만 1인당 노인 의료비는 약 62만 엔으로, 도쿠시마현에서 가장 낮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노인요양원은 정원 미달로 지난해 문을 닫았다.“노인들이 매일 머리를 쓰면서 나뭇잎을 팔아 돈을 벌다 보니 건강도 좋아지고 활기를 되찾게 됐습니다. 생산자들의 얼굴색이 달라졌어요.” 요코이시 부사장은 가미가쓰 마을에 생각지도 못했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자랑했다. 도쿄=김국진 기자·bitku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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