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정영화기자] 사람들 대부분은 젊어서 노후계획을 세울 때 '얼마의 돈이 있으면 될 것 같다'고 막연히 숫자를 떠올린다. '2억원 정도면 될까? 아니야 3억원 이상은 돼야 해. 그럼 지금부터 연금을 들고, 또 적금 얼마를 들어야지.' 이런 식으로 노후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로 돈이 없는 노후보다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노후가 더 행복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실제로 노인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와 다르다. 이들은 "아무리 돈이 있어도 외롭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돈만으로는 결코 행복한 노후가 보장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3년째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 김모(68ㆍ남)씨는 명문대 법대를 나와 검찰청에서 평생 공직 생활을 해왔다. 나름대로 어깨에 힘을 주고 산 세월이었지만 퇴직을 한 이후 달라졌다. 퇴직 후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고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공직에 있었던 덕택으로 연금이 꾸준히 나와 생활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외로움은 계속됐다.
젊었을 때는 연금만 꾸준히 나오면 돈 걱정 안하고 살 테니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혀 노후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노후대책=경제대책' 이라는 생각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골프, 등산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외로움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긴 시간 동안 아무런 할 일 없이 빈둥대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삶의 의욕을 잃어갔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시작한 일이 택시 운전이었다. 일은 하고 싶은데 나이가 들다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중 하나가 택시 운전이었다. 개인택시가 아닌 영업용 택시였기 때문에 한달 수입은 100만원도 안되었다. 때로는 자신보다 새파랗게 젊은 사장의 눈치도 봐야 했다. 하지만 '일을 한다'는 기분과 가끔 승객과 대화를 나누는 재미 때문에 일은 조금 고되어도 할 만 했다. 최소한 외롭진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은 아내를 비롯해 가족들에게 감추고 시작한 일이었다. 연로한 아버지나 남편이 개인택시도 아닌 영업용 택시회사에 취직을 했다면 '부모를 늙어서까지 고생시킨다' '자식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는 등 남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까봐 염려되어서였다.
그러나 비밀은 대부분 탄로 나기 마련. 검사인 사위와 전문직 종사자였던 딸이 광화문에서 택시를 잡았는데 그것이 바로 지나가던 아버지의 택시였다. 사위와 딸에게 들킨 아버지는 "돈 때문이 아니라 심심해서 일을 시작했다"고 항변(?)했지만, 딸은 예상대로 "아버지, 저희가 용돈을 그렇게 안 드렸나요? 그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우셨어요?"라며 속상해했다.
◆노후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행복'
"젊은 것들은 절대 몰라." 노인이 된 사람들의 얘기는 한결같다. 뭘 모른다는 것일까? 그것은 행복한 노후는 결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자신들이 아직도 마음이 젊다는 것을 모른다는 얘기다. 비록 육체적으로 늙긴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20~30대에 머물러 있고 필요한 건 '내가 아직 쓸 만한 사람이다'라는 느낌인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늙으면 쓸모없는 사람 취급하는 사회적 풍토 때문에 이들은 한없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얘기한다. 50~60세가 지나면 능력 여부를 떠나서 퇴직할 것을 세상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요구한다. 그동안 쌓아놓은 노하우, 인적 네트워크 등은 중요치 않게 여긴다. 그저 많은 연봉을 줘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생각, 늙으면 젊은 사람보다 감각이 떨어질 것이란 막연한 편견 때문에 이들을 사회 밖으로 자연스럽게 내모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이재규 씨는 < 노년의 탄생 > 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행복한 노후란 잘 쉬고 노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내가 여전히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노년이 인생의 마무리가 아닌 새로운 탄생을 일궈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씨는 실제로 노년에 열정적으로 산 여러명의 인물들을 소개했다. 일례로 인상주의 이후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70대의 나이에 새로운 형식의 유파를 개척했고 90세가 넘어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20세기 최고의 연주자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도 97세로 죽는 그날까지 새로운 곡을 연주할 계획을 세웠고 또 연습을 했다. 한번은 어느 기자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이신 선생님께서 아직도 하루에 6시간씩 연습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95세인 지금도 연습을 통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네"라고 답했을 정도다.
◆은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
은퇴자들의 대안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마리카와 하워드 스톤 부부는 < 당신은 너무 젊다 > 에서 은퇴를 뛰어 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첫째 은퇴라는 단어 자체를 버려라. 내 사전에 은퇴라는 말 자체를 없애라는 것이다. 은퇴라는 말 대신 '르네상스' '새로운 시작' '변화'가 퇴직 이후의 삶을 설명하는 단어로 대신하라고 얘기한다. 인류의 진화단계로 보면 은퇴는 최근에 생겨난 단어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나이든 사람들도 혜안과 지혜와 익힌 솜씨를 가지고 사회의 생산적인 일원으로 활동했었다는 것이다.
또한 배움의 열정을 새롭게 하고 에너지를 재충전시킬 것을 권유했다. 어린 시절의 꿈으로 돌아가 보고 모험심을 불태우라고 주장했다.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정열적으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에 늘 신경 쓸 것도 당부했다.
마리카와 하워드 스톤 부부는 "은퇴설계를 경제적인 사건으로만 취급해 단순히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강조하는 근시안적인 설계보다 인생 전체를 놓고 포괄적으로 설계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바일로 보는 머니투데이 "5200 누르고 NATE/magicⓝ/ez-i" 재테크주간지 머니위크 [바로가기] 정영화기자 jj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