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연합뉴스) 안수훈 특파원 = 병환에 시달리는 노부모를 직접 봉양하는 미국 중년 남성들이 늘고 있다.
미국 알츠하이머병(노인성치매) 협회와 전국 간병인 연맹에 따르면 현재 성인 환자를 돌보는 남성의 수는 1천700만명으로 추산된다. 가족들이 간병을 하는 사례중 남성들이 간병을 맡는 경우가 96년에는 19%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40%에 육박하고 있다.
`유나이티드 호스피탈 펀드'란 단체의 가족.건강관리 프로젝트 팀장인 캐럴 레빈은 "과거에는 남성들이 `어머니를 모실 것'이라고 하면 이는 `아내가 봉양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젠 남성들이 직접 봉양하는 경우가 엄청 늘었다"고 전했다.
한 예로 올해 53세의 피터 니컬슨 씨는 작년 겨울 뇌졸중으로 쓰러진 노모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노모가 사는 웨스트 할리우드로 이사했다.
하루 종일 곁에서 노모를 돌보는 생활을 하면서 몸무게가 20㎏이나 빠졌다. 가끔은 스트레스로 인해 빈혈증세도 나타나고 있다. 저금해 놓은 돈도 떨어져가고 있다. 하지만 가장 힘든 상황은 노모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세요?"라고 물을 때다.
니컬슨 씨 처럼 노모를 간병하거나 노부모를 돌보는 중년 남성들이 증가한 배경에는 핵가족화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 증가한 점도 작용하고 있다.
노모를 봉양하는 중년 남성들의 경우 어려운 점도 많다. 우선 노모를 돌보는 일에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맡는 경우가 많고, 나아가 하루 종일 노모를 돌보는 생활이 지속되면서 그동안 맺어온 친구관계 등이 모두 끊어지면서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경우가 많이진다.
니컬슨 씨는 "바깥 세상과 단절되어 고립되게 되며, 나를 위한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면서 "하루는 맘먹고 다저스 게임을 보러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면서 `이게 생활인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전했다.
남성들은 특히 여성에 비해 비슷한 경험을 통해 친구를 사귀기보다는 직장 업무를 통해 친구를 사귀는 경우가 더 많은게 일반적 특징이어서 노모 봉양을 전업으로 하는 남성들은 소외감이 더 클수 있다는게 서던 캘리포니아대학 노인학과 다너 벤튼 교수의 분석.
특히 노모를 목욕시킬 때 어렵고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노모가 당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치매에 걸린 노모가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수 있는 상황 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모를 봉양해야 하는 중년 남성들의 고민중 하나는 회사문제. 타우슨 대학의 다너 와그너 교수가 지난 2003년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중 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성들은 보통 회사에서 재정적으로 지원해주는 간병 프로그램을 잘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노모를 봉양한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상사가 회사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오해하거나 회사에서 해고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82세의 노모를 봉양하는 매트 카신(52)은 회사에 노모 봉양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는 경우. 그는 "직장 상사야 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회사는 내가 회사일에 전적으로 집중해 주기를 바라는데 다른데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역할과 노부모를 봉양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노모 봉양에 나선 미국 중년 남성들의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29일(현지시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