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본 3대 난맥상
▼쏟아지는 민생대책 읍면동 공무원 1, 2명이 처리
인력 달려 일반직이 순환근무… 사후감독도 부실
일자리로 자활 돕기보다는 단순 생계보조에 그쳐
“제가 맡은 기초생활수급자만 300명이 넘습니다.
추가로 이달 말까지 방문해 상담하라고 배정받은 집이 100여
가구나 되지만 아직 절반도 못 갔어요. 정부가 예산을 더 푼다는데
제 몸이 두 개, 세 개라면 몰라도 감당할 수가 없어요.”서울의 한
동(洞) 주민센터에서 복지업무를 담당하는 김모 씨는 이달 들어
매일 야근을 했다.
새 학기 개학을 앞두고 저소득층 자녀의 학비 지원 업무가 몰린
데다 경기침체 탓에 긴급생활보호 요청이 폭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하루 30∼40명이던 방문 상담자도 요즘은
50∼60명으로 크게 늘었다.
정부가 각종 민생안정 대책을 쏟아내면서 일선 현장의
복지전달체계에 심각한 ‘병목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중앙정부와 사회취약계층 사이에서 접점 역할을 하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에게 복지 관련 업무가
집중되는 ‘깔때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정부도 이런
상황을 인식해 복지전달체계 개편 작업에 착수했지만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 동맥경화 걸린 복지행정한나라당 원희목 의원에 따르면
보건복지가족부가 시행하는 사회복지 및 의료보건서비스만 해도
100가지로 이들 서비스에 올해 책정된 예산만 18조4355억 원에
이른다.
이 중 13조4095억 원이 쓰이는 사회복지서비스 예산은 대부분 기초
지자체별로 몇 안 되는 사회복지 공무원을 통해 집행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현재 전국의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실질적으로 사회복지 업무를 맡은 공무원 수는 평균
1.3∼2.3명에 불과하다.
교육과학기술부(장학), 국토해양부(임대주택), 노동부(고용지원 및
실업급여) 등 다른 부처들도 다양한 명목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의 ‘SOS 위기가정 특별대책’처럼 지자체가 추진하는
복지사업도 있다.
전문가들은 각 부처가 즉흥적 경쟁적으로 민생대책을 쏟아내고,
여기에 정치권의 선심성 대책까지 더해지면서 현장에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복지제도가 복잡해졌다고 지적한다.
허술한 복지전달체계를 그대로 두고 추가경정예산의 상당 부분을
민생지원에 할애한다면 어려운 처지의 저소득층을 돕는다는 취지와
달리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 사후관리 부족, 복지 따로 고용 따로복지서비스의 취지와 업무
내용을 숙지한 전문공무원이 많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이 따로 있지만 수가 부족해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이 1년 단위로 순환근무를 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소수의 직원이 과도한 책임을 지는 동시에 현장에서 수급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할 때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다 보니 사후 관리나
감독도 쉽지 않다.
최근 서울 양천구에서 벌어진 장애인 보조금 횡령사건, 부산에서
발생한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생계비 착복 사건 등은 부실한
사후감독이 키운 ‘예고된 비리’다.
각종 보조금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지급됐는지 사후점검을
철저히 하려면 대상자의 소득과 자산, 부채 파악이 급선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을 구축하고
있지만 일러야 11월경에나 가동될 예정이어서 상당 기간
복지행정의 혼선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일자리가 최선의 복지”라고
강조해 왔지만 한국의 복지제도는 여전히 생활비 보조 같은 직접
지원에 무게가 실려 있다.
사회보장급여를 담당하는 복지부와 고용대책을 맡은 노동부의
업무가 유기적 연결성을 갖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선진국의 복지정책은 복지와 고용이
함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두 분야를 한데 묶어 정부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