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창규.김은하.백일현.박수련.장주영] 19일 오전 6시30분 서울 은평구 신사동 한 주택. '노인 돌보미' 이성화(42·여·사진上)씨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8시가 되자 대문을 나섰다. 그가 근무하는 노인복지센터까지 걸어서 30분 거리지만 발걸음이 바빴다. 이씨는 6년째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엄마들'이 억지를 부리실 때면 크게 화를 낼 때도 있었다”면서 “그러다가도 '나까지 이러면 어쩌나' 싶어서 다시 마음을 돌린다”고 말했다.“밤새 엄마들이 별일 없이 잘 주무셨을까.”걸음을 재촉해 노인복지센터에 도착한 시각은 8시 30분. '엄마들'부터 찾았다. 이곳은 30평 남짓한 가정집 형태의 치매노인 단기보호센터다. 거실에는 노인 13명이 허름한 소파에 앉아 있었다.간혹 반가운 기색을 보이는 노인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씨를 맞았다. 74세부터 99세까지, 평생의 기억을 잃어버린 치매 노인이다.이씨는 야간 당직을 선 돌보미에게 업무 인계를 받은 뒤 2~3명의 봉사자와 대청소를 시작했다. 7개의 침대가 있는 큰방과 온돌방, 거실 구석구석을 비눗물로 청소했다. 30분이 지나자 어느새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이씨는 “어르신들이 소파나 살림살이에 대소변을 보거나 침을 흘리기 때문에 날마다 깨끗이 닦아야 한다”고 했다.'퉤~'이때 거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서희순(가명·84) 할머니가 갑자기 바닥에 침을 뱉었다. 옆에 있던 김묘녀(가명·82) 할머니가 “이 여편네가 또 이러네. 여기가 니 안방이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말싸움은 이내 실랑이로 이어졌다.서 할머니는 알아듣기 힘든 말로 혼자 중얼중얼하더니 “누가 방인지 몰라”라고 한마디 쏘아붙이면서 김 할머니를 노려봤다. 멀리서 이를 발견한 이씨가 넉살 좋게 “아이고, 우리 엄마 또 침 뱉으셨어”라고 말하며 휴지를 빼들고 달려왔다. 이씨는 서 할머니의 입에 묻은 침을 손으로 훔치면서 토닥였다. “엄마, 이러면 안 된다니까. 딴 사람들이 욕하잖아.” 서 할머니는 퀭한 눈으로 그저 이씨의 손만 꼭 잡을 뿐이었다. 잠시 후 월요예배 시간에도 서 할머니는 이씨 옆에 꼭 붙어 앉아 손을 놓지 않았다.점심 시간이 되자 이씨가 분주해졌다. 영양사가 준비한 메뉴는 된장국과 고기 전, 취나물, 깻잎나물. 13개 식판의 밥 양이 모두 달랐다. 노인들의 식사량을 기억하고 있는 이씨가 각 식판의 주인을 꼭 맞게 연결해줬다.“이렇게 하지 않으면 할머니들끼리 밥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손으로 식판을 엎기도 해요.”밥을 앞에 두고도 이경선(가명·99) 할머니는 수건만 만지작거렸다. 마치 옷감을 마르듯 가지런히 수건의 양쪽 귀를 맞추고 있은 지 한 시간째. 이씨가 “엄마, 이제 옷 그만 만들고 밥 잡숩시다”고 밥상 앞에 끌어 앉혔다. 이씨는 “이 분은 평생 한복 만드는 일을 하셨었다”며 “날마다 얌전히 앉아 수건을 만지작거리는 게 일”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밥 먹는 방법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이씨가 직접 숟가락에 밥을 얹어 넣어줘도 씹지 않고 멀뚱멀뚱 있었다. 이씨가 일일이 “엄마 꼭꼭 씹어야지”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그대로 입 밖으로 음식이 흘러나왔다.
점심을 먹고 나니 양치와 화장실 행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양치 방법을 잊어버린 데다 양칫물을 꿀꺽 삼켜버리는 노인들 때문에 이씨와 봉사자가 일일이 양치를 시켜줬다. 잠시 후 송경순(가명·74)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듯 바지춤을 쥐었다. 이씨는 재빨리 송 할머니를 화장실로 데려가 직접 바지를 벗기고 변기에 앉히더니 송 할머니가 변기에서 일어설 때까지 곁을 지켰다. 뒤를 닦는 것도 이씨가 도와줬다. 이씨는 “송 할머니는 치매 진행 속도가 빨라 증세가 제일 심각하다”며 “화장실 휴지통을 뒤지거나 변기물에 손을 씻기도 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말했다.“아예 정신이 없는 엄마는 오히려 편한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엄마는 갑자기 화를 내거나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해 오히려 더 어려워요.”오후에 음악치료 강사가 다녀간 뒤, 할머니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이씨는 노래와 춤으로 한바탕 힘을 쏟은 노인들에게 간식을 주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롤케익 빵과 요구르트를 꺼내 개인용 접시에 분배했다. 오물오물 간식을 먹고 난 노인들이 잠시 후 방으로 하나둘 들어갔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있는 이씨가 준비한 찜질팩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여기저기서 “아이고 시원해~” 소리가 흘러나왔다.오후 4시, 피곤했는지 노인들이 소파에 앉아 쉬는 틈을 타 이씨도 잠시 자리에 앉았다. 출근한 지 7시간여만에 여유가 생기나 했더니 한 할머니가 살며시 이씨 뒤에 앉았다. 할머니는 이씨의 어깨를 두드리는가 싶더니 잠시 후 이씨의 등에 자기 몸을 기댔다.“엄마가 어깨 주물러 주는 줄 알았더니 엎어달라고.”이씨는 노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웃었다.한 노인은 “전북 장수에 있는 내 집에 가겠다”며 오후 내내 현관문을 열어달라고 졸랐고, 또 한 할머니는 “아까 왔던 노래 강사가 어디 갔느냐”고 찾았다. 그러는 사이 오후 5시가 됐다.다시 식사 준비를 하러 주방에 들어가는 이씨, 그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특별취재팀김창규·김은하·백일현·박수련·장주영·김진경 기자, 고종관 건강전문기자사진=변선구 기자, 편집=안충기·이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