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을 통해 제2인 인생을 살고 있는 ‘퇴직자’
4명이 지난 8월1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노인 일자리에 관한 경험담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인숙·권오봉·이성규·최용열씨.
|강윤중기자
토론을 나누고 있는
권오봉·이인숙·최용열·이성규씨(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젊은 시절 뒤도 안돌아 보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생이지만, 갑작스러운 조기퇴출·정년단축은 사회에 벌거벗겨진 채 내동댕이쳐진 느낌을 준다.
남의 일로만 여기던 노년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자면 너무나 황폐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생산하지 못하는 여분의 인생이란 생각에 허탈감과
무력감이 밀려온다. 휴식과 여유를 즐기기에는 60대 초반의 젊은 노인들에게는 남은 날들이 너무 길다. 그날 그날을 힘겹게 살아온지라 딱히 노후
준비도 해두지 않은 대다수 노인들에게 제2의 인생이란 없고, 그저 자투리 인생이 있을 뿐이다. 정부에서 주관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 등에 지원하
거나 젊었을 때의 특기를 살려 재취업을 시도하지만 수십만원짜리 허드렛일뿐이다. 지난 8월1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재취업한 노인 4명이
만나 김다슬 기자의 사회로 노년의 일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5천만원 연봉서 월 20만원으로
사회(김다슬 기자)=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권오봉=젊었을 때는 과학기술연구원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했습니다. 회계팀장으로 있다가 2003년도에 58세 정년으로 퇴직했습니다. 원래 60세 정
년인데 외환위기 때 정년이 낮춰졌지요. 그 후로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한자 해독작업도 하고 교통서포터스나 숲해설도 해봤습니다. 지금은 홍릉
초등학교에 한자예절 강사로 나가고요. 주말에는 국가 시험 감독도 합니다.
이인숙=국어 교사만 31년을 하다가 몸이 아파서 2002년도에 57세로 퇴임을 했습니다. 지금은 대한노인회 서대문구지회에서 숲해설 지도사 일을 하
고 있어요.
최용열=광업진흥공사에서 과장으로 퇴임했습니다. 53세이던 93년도에 명예퇴직을 했지요. 나이가 50이 넘은 후에 다른 걸 해봐야겠다는 의욕을 가
지고 나왔죠. 공무원생활이 뻔하지 않습니까. 집 한 채 하고, 퇴직금 1억7000만원정도 받고 나왔어요. 그리고 사업 좀 하다가 잘 안된 후로 고등학
교 지도교사로 8년 근무하고 퇴임했습니다. 지금은 지난 6월부터 서울시 교통서포터스로 하루 7시간씩 일하고 있습니다.
이성규=28년 동안 육군에 있다가 대령으로 물러났습니다. 그후 군인공제회에서 10년간 일하다가 98년에 퇴임하고 집에 7~8년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하철 도우미를 6개월 정도 하고 청계천 복원 관련 일을 하다가 지금은 지하철도우미팀장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하철도우미 일은 500여명이 보건
복지부 예산으로 하는 것인데 참여자에게 한달에 한 20만원씩 주는 사업입니다.
사회=현직에 있을 때와 지금의 수입을 비교해본다면 어떻습니까.
권오봉=전에는 연봉으로 한 5000만원 받았어요. 지금은 연금 다 합치고 일하는 거 다 해서 월 150만원이 안넘어갑니다.
이인숙=저도 5000만원 정도 받았습니다. 지금은 사실 연금이 250만원가량 나와요. 지금 일하는 것은 20만원 나오고요.
최용열=저는 한 3000만원정도 받았어요. 지금은 월 50만원 받습니다.
이성규=전에는 연봉 4000만원 정도. 지금도 연금이 나오니까 연 2500만원 정도 돼요. 지금 일은 20만원 받습니다.
◆ 노인이라고 보수 너무 적어
사회=퇴직 전과 비교해 대우는 어떻습니까. 일은 만족하십니까.
이인숙=한달에 10번 정도, 한번에 2시간씩 일을 하고 20만원을 받아요. 그래도 일 자체는 너무너무 재밌어요. 제가 관심이 있던 분야이기도 하고 아
이들하고 얘기하는 것도 좋고요. 그런데 보수가 너무 적어요. 실제 해설하는 시간이 딱 2시간인데 자료를 준비하고 계획 세우고 아이들 통솔하다 보
면 거의 하루 꼬박 일을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학교에서 교육하는 시간하고 똑같은데 노인이라고 보수를 너무 적게 줘요.
최용열=사실 일이 좀 힘들어요. 불법주차 단속 실적을 올려야 하는데 요즘은 저희가 다가가기만 해도 알아서 차를 빼니까 계속 돌아다녀야 해요. 그
리고 똑같이 고생하는데 50대 후반 팀장들은 100만원 받고 저희는 55만원 받아요. 일은 힘든데 보수가 적은 게 좀 그렇습니다. 또 저희는 딱 11개월
계약이거든요. 12개월이 되면 퇴직금을 줘야 하니까 11개월로 자르는 거예요. 일반 기업도 아니고 모범을 보여야 할 서울시가 이래도 되는 건지.
권오봉=지금 하는 한자예절 강사일은 1주일에 2번, 하루 2시간씩 일하고 시간당 2만5000원 받아요. 전에 교통 서포터스를 할 때나 다른 일을 할 땐
관심사도 다르고 감시받는 느낌이고 했는데, 지금은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니까 만족해요.
이성규=일단 재밌습니다. 지하철 도우미가 서울시내에 한 400명 되는데 제 일이 그분들 도와주고 애로사항 확인해서 수렴하는 역할이거든요. 다니
면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 만나서 서로 대화할 수 있으니까 참 좋습니다. 1주일에 4시간씩 3일 하고 20만원 받습니다.
◆ 400명 뽑는데 7천명 몰려
사회=퇴직 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최용열=퇴직을 하고 집에서 한 몇 개월씩 있다보니까 집사람이 어디라도 좀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60대지만 지금은 운동들도 많이 해서 체력
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퇴직했다고 놀고 있자니 정신적으로 힘들더라고요.
이성규=퇴직 후 집에서 7~8년을 무료하게 보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신문을 보니 노인들 지하철 도우미를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반가운 마
음에 인터넷으로 지원했죠. 다음엔 청계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고 해서 가봤더니 7000명이 지원했더라고요. 뽑힌 건 400명인데. 일 구하기가 너
무 힘들어요.
권오봉=고향에서 아무 기반도 없이 서울에 올라와 생활하다 보니까 4남매 키우고 먹고사는 데만 바빴어요. 퇴직한 후에도 돈을 벌 수밖에 없었습니
다. 퇴직하고 4년인데 4가지 업종은 거친 것 같습니다. 적극적으로 일을 찾았어요. 노인회나 단체 같은 곳을 통해서요.
이인숙=몸이 아파서 학교를 그만뒀는데 쉬다보니까 뛰고 싶고, 일하고 싶고 아이들이 그리웠어요. 그러다 아는 분이 아이들에게 숲해설을 해주는
일이 있으니 해보라고 하셔서 지원했습니다. 20만원 내고 두 달 교육받고 실습한 후에 들어갔어요.
◆ 퇴직후 허탈감 너무 커
사회=퇴직 후 가장 어려운 점은 뭔가요.
이인숙=제가 결혼이 늦었어요. 딸이 둘 있는데 큰애가 만 28세, 둘째가 24세. 첫째가 유수한 대학원까지 마쳤지만 마땅한 직장이 나오질 않아요. 둘
째는 대학 졸업반이고요. 그러다보니 교육비도 상당히 들어가고 생활비도 많이 들어가요. 남편은 이미 퇴임을 한 상태라 큰 수입이 없어요. 제가 연
금을 받으니까 금전적인 어려움은 덜한데 자식들 문제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죠.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요. 또 30년간 일을 하다 관두
니 허무감, 무소속감이 견디기 힘들었어요. 아침에 눈이 떠지면 ‘출근해야지’ 하는 생각이 아직도 들어요.
이성규=일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정신적인 허탈감이 컸어요.
최용열=퇴직금 1억5000만원 받고 나왔는데 아들이 사업한다고 해서 돈이 좀 들어갔어요. 그거로 다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우리 세대만 해도 자
식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니까. 생활비는 집사람이 거의 다 대고, 내가 조금씩 대고 그래요. 제일 견디기 힘든 게 지금은 힘든 일을 하고도 대가를 그
만큼 못받는다는 부분입니다.
권오봉=제가 원래 노는 성격이 아니에요. 가만히 놀면 무료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고 해서 부지런히 일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보니까
사기 치려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겉은 번드르르한 회사라서 가보면 다단계거나, 투자하라거나 해요. 유혹이 많은 거죠.
◆ 자식 돕느라 노후대책 소용없어
사회=직장 다닐 때 노후대책은 세우셨나요.
최용열=내 경우는 공사에 다니다 퇴직할 때 나이가 53살이라 노후대책을 생각하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