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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아버님 결혼시켜 드려야겠어요!

  • amargi
  • 2009-03-03
  • 조회수 8104
여보, 아버님 결혼시켜 드려야겠어요!
노인도 외로움 느끼는 것은 젊은 사람과 다르지 않아

월드컵이 열리던 해에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가 나오면서 그동안 금기시돼오던 노인들의 성문제가 수면 위로 등장하였습니다. 외로운 일상이 전부였던 영화 속의 박치규 할아버지가 어느 날 공원에 갔다가 우연히 자신의 이상형 이순례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두 분은 첫 눈에 반합니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 못지 않은 뜨거운 사랑을 하며 우리 사회에 노인 성문제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었습니다.
요즘은 경제성장과 함께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들은 이제 옛날처럼 혼자 지낼수만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용돈 많이 드리고, 자주 안부 전화드리는 것보다 혼로 계신 시부모나 친정 부모님께 이성친구 하나 소개시켜 주는 것이 최대의 효도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 영화 <죽어도 좋아> 노인의 외로움과 성문제에 대한 것은 젊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친구의 시어머니가 2년 전에 돌아가신 후 홀로 쓸쓸하게 지내시고 계시던 시아버지를 결혼시켜 드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친구도 아마 이 영화를 봤는지 모르지만 며느리 덕분에 다시 결혼하게 된 친구의 시아버지는 요즘 하루 하루가 그렇게 즐겁고 행복할 수 없답니다.
친구 시아버지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사연은 이렇습니다.
공무원생활을 하다가 정년 퇴직하신 후 시부모님은 용인 근교 전원주택에서 두 분이 단촐하게 따로 사셨습니다. 그런데 2년 전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장남인 남편은 아버님을 모셔오자고 했지만 아버님은 도회지 생활이 싫다며 용인에서 혼자 사셨습니다. 7순이 넘은 나이에 혼자 사시는 것이 걱정되었지만 아버님의 고집이 완고해서 한 달에 두 번씩 큰 며느리가 용인으로 가서 빨래도 하고 반찬거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큰 며느리는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주말에 가는 것이 힘들어 작년부터는 도우미 아줌마에게 부탁해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시아버님을 돌봐주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가을에 아버님이 큰 사고(?)를 치셨습니다. 도우미로 일하시는 아주머니는 46세에 남편이 죽은 후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혼자 살고 계신 63세 할머니였습니다. 75세인 시아버지와 자주 만나다보니 정이 들었습니다. 도우미 할머니가 해주는 반찬과 밥을 먹으며 두 분이서 도란 도란 얘기도 나누고, 함께 용인 5일장도 다니시면서 데이트도 하며 정을 나누어왔던 것입니다. 큰 며느리는 한 달에 두 번 시아버지를 뵈러 가는데, 작년 겨울부터는 며눌아가야, 올 필요 없다며 한사코 며느리가 오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아버님께 섭섭하게 해드린 것이 있나 곰곰히 생각해 봤지만 특별히 걸리는 게 없었습니다.
올해 설날에 아버님을 모시고 와서 3형제가 함께 제사를 드리고 떡국을 먹는데, 아버님이 도우미 할머니 얘기를 자식들 앞에서 꺼냈습니다. "파출부 할멈이 음식도 잘하고 나한테 너무 잘해." 아버님의 말을 듣고 자식들과 며느리들은 파출부 할머니 참 잘 구했구나 생각했는데, 이어져 나온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파출부 할멈도 혼자 살아. 그래서 내가 사는 집 방도 남고 해서 같이 지내려고 해."

 
▲ 영화 <죽어도 좋아> 혼자 계신 시부모나 친정 부모님께 여자 친구 하나 소개시켜 주는 것이 최대의 효도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아버님의 말 뜻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버님께 "그럼 그렇게 하시죠. 도우미 할머니도 왔다 갔다 하시기 불편할텐데요." 남편의 말을 듣자 아버님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사실 자식들 앞에서 나 도우미 할멈과 살고 싶어라고 말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설날을 큰 며느리집에서 쉬신 후 시아버님은 다시 용인으로 가셨습니다. 설날 연휴 마지막날 큰 며느리는 남편에게 시아버님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 얘기는 한마디로 "여보, 시아버님 결혼시켜 드려야겠어요" 였습니다. 남편은 지금 무슨 말을 하냐며 처음에는 펄쩍 뛰었지만 자초지종을 듣고 결국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주 용인 전원주택에서 시아버님과 도우미 할머니는 가족들만 조촐하게 모인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식이라기보다 서로 가족소개를 하는 자리입니다. 도우미 할머니와 같이 사신 뒤로 요즘 시아버님은 입이 귀에 걸리실 정도로 사는 것이 즐거우신가 봅니다. 한 달에 두 번씩 용인으로 내려가던 큰 며느리가 "아버님, 이번 주말에 용인 내려 가요"라고 하면 시아버님은 "내려 올 필요 없다. 우리 신혼이잖아" 하시면서 극구 내려오지 못하게 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짝이 있다는 것은 좋은가 봅니다.
옛날처럼 노인들은 늙으면 그냥 혼자 살다가 죽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은 이제 바뀌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됩니다. 노인들의 외로움, 특히 이성문제에 대해 친구 시아버지를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봄이 왔습니다. 날씨도 따뜻하니 홀로 계신 시아버지, 시어머니들이 계시면 이성친구 사귀라고 하면서 용돈이라도 좀 드리면 아마도 사랑받는 며느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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